“정부만 믿고 언제 기다리나”…전세사기 피해자 협동조합 ‘첫 발’ 내디뎠다

김태희 기자

동탄 전세사기 피해자 18명 설립

피의자 주택 소유권 이전받은 뒤

임대 수익 창출해 분배하는 방식

경매·압류 등 없어야 진행 가능

완전한 피해 복구는 어렵지만

피해자들 “정부 대책보다 낫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가 지난 5월 16일 국회 본청계단에서 대책위원회가 연  ‘선구제 후회수’ 방안 반대 정부여당 규탄대회에서 억울한 사연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가 지난 5월 16일 국회 본청계단에서 대책위원회가 연 ‘선구제 후회수’ 방안 반대 정부여당 규탄대회에서 억울한 사연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정부 대책에 따르면 소송이나 경매를 통해 피해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데 오래 걸리기도 하고 받아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피해 금액 전체를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당장 확실한 방법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김성진씨(30대·가명)는 6일 ‘탄탄주택협동조합’에 가입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한국사회주택협회와 동탄 전세 사기 피해자 18명이 모여 설립한 이 조합의 1호 가입자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은 지난달 31일 동탄 전세사기 피의자로부터 오피스텔 18채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받고 피해자들의 전세금에 대한 채무를 인수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협동조합 방식 전세 사기 피해 복구’을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피해 복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모였다는데 의미가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도 지난달 전세사기 관련 기자회견에서 “(동탄처럼) 피해자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소유권 이전으로 청약 기회 상실 등의 우려가 불식될 것이다. 수차례 실국에서 피해자들을 만나 만든 대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의 피해 복구 방식은 피해자 대신 조합이 임대인으로부터 주택 소유권을 이전받은 뒤 이를 통해 임대 수익을 내 피해자들에게 분배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우선 피해자들은 임대인으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은 조합과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 명목상 계약만 새로 맺는 것으로, 피해자들이 추가로 지출하는 금액은 없다.

지난달 14일 경기 화성시 동탄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탄탄주택협동조합 사업 설명회에 참석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사회주택협회 제공

지난달 14일 경기 화성시 동탄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탄탄주택협동조합 사업 설명회에 참석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사회주택협회 제공

새로운 계약의 보증금은 현 시세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새로운 전세 보증금은 시장 매매가의 90%다. 나머지 10%는 나중에 돌려받기로 약속하는 개념의 출자금이 된다. 예컨대 시장 매매가가 1억원인 주택이 있다면 이중 9000만원은 전세보증금이, 1000만원은 출자금이다.

피해자들의 출자금은 수익을 내기 위한 ‘종잣돈’으로 쓰인다. 출자금은 전세 계약을 해지하고 나가는 피해자에게 기존 보증금을 지급할 때 쓰인다. 조합은 이렇게 빈 주택에 새로운 월세 세입자를 구할 계획이다. 이들로부터 받은 월세 수익이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또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은 차례대로 전세 계약을 해지하고 보증금을 받아 나갈 수 있다. 최종적인 피해 복구는 모든 전세가 월세로 전환(기존 사기 피해자의 전세 계약이 모두 해지)되고, 동시에 조합원들에게 보증금과 출자금을 돌려줄 때 달성된다.

다만 완전한 피해 복구는 어렵다. 조합이 매입한 주택 대부분은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높은 이른바 ‘역전세’였기 때문이다. 조합원(피해자) 18명의 계약 당시 보증금은 23억9000여만원이었다. 협동조합과 새로 맺은 계약에 따른 보증금은 20억여원이다. 출자금 2억1000여만원을 모두 받는다고 해도 애초 금액보다는 1억8000만원 가량이 모자란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이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전세 사기 특별법에 따른 정부 지원책은 경매 낙찰 지원, 저금리 신용대출 지원, 공공임대 제공 등을 담고 있지만 조합에 가입한 피해자들은 이런 지원책이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해자 이정호씨(20대·가명)는 “주택 청약에 당첨돼 정책 자금을 대출받은 탓에 새로 주택을 인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경매 지원, 공공임대 주택 지원 등의 대책은 나 같은 사람에게 실효성이 없다. 협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김씨의 경우 임대인으로부터 1억3500만원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였다. 김씨가 거주하는 주택의 현 시세는 1억2000만원으로, 90%인 1억800만원에 조합과 계약을 맺었다. 많게는 2700만원까지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언제 다시 값이 오를지도 모르는 집을 억지로 사고 싶지 않았고, 기존 임대인이 떠안은 채무가 얼마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송까지 갈 여력이 없었다”고 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조합을 지원하는 한국사회주택협회 측은 경기도 등 공공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피해 복구가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문영록 한국사회주택협회 상임이사는 “앞으로 수익금이 쌓이고 차례로 피해 복구이 이뤄지겠지만 문제는 시간”이라며 “피해자들은 최대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는 “무조건 공적 자금을 투입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조합이 보유한 주택을 담보로 저리 대출을 해주는 방법 등이 있다”면서 “이렇게 된다면 더 많은 물량을 월세로 전환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피해 복구 속도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방식은 모든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적용되긴 어렵다. 우선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처럼 주택이 경매로 넘어간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 또 주택에 압류 등이 걸려 있지 않은 말 그대로 물건이 깨끗한 상태여야만 가능하다. 탄탄주택협동조합의 경우처럼 역전세 상황에선 완전한 피해 복구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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