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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 아집의 혼동

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경제적인 편익과 비용을 비교해서 행동한다는 건 협소하고 건조하다는 비판을 들을지언정 가정치고는 과히 나쁘지 않다. 꽤나 많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만큼 인간의 행동을 잘 설명하는 건 자기합리화이다. 자기합리화를 잘 묘사해주는 것은 영화에 나오는 불법 무기상의 대사이다. “자동차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 알아? 사람들이 자동차를 팔지 않으면 나도 무기 안 팔아. 적어도 내 총은 안전장치라도 있어.”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자신의 행동을 사후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것이 자기합리화인데 이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럴듯한 논리를 개발해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도 하고, 뭔가 책임이 필요한 행동에는 자기합리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합리적인 듯 보이는 이유가 있어야 본인이 책임을 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좋게 생각하면 적당한 자기합리화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 듣는 사람이야 ‘아, 저 인간은 왜 또 저렇게 억지를 부리나’ 짜증나겠지만 자신의 모든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피곤해서 못 산다. 그러나 이게 적정선을 넘어서면 사회적 피해는 생각보다 크다. 자신의 행동과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우기기 시작하면 집착에 가까운 자기합리화가 잇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합리화와 권력이 합쳐지면 무서운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집단을 찍어내는 것이다.

현 정권의 표적 중에는 노조·시민단체가 있고,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기득권화, 내로남불 등이다. 그런데 어떻게 노조·시민단체가 30년 전만큼 순수할 수 있겠나? 군사정권 이후 진보가 정권을 세 번 잡았는데 거기에 그들이 참여했다. 거리에서 시위만 하는 게 평생의 업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거쳤어야 할 현실정치 참여의 과정이었고 그 와중에 권력과의 네트워크도 형성되었다. 오해는 마시길 바란다. 마구잡이로 그들을 방어하자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돈을 허투루 썼다면 그만큼의 책임을 지면 된다. 또 검찰 등을 통해 상대방을 찍어내는 악습에는 그동안 과하게 고소·고발에 기댄 노조·시민단체의 책임도 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겉으로 드러내는 이성적 이유가 항상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끼리끼리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누구보다도 목숨 거는, 현실에 닳고 닳은 현 정권의 정치인들이 노조·시민단체를 향해 초심을 찾아 순수하게 사회를 바꾸라고 훈계를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닐 것이다.

인간 행동의 내면에는 자존심·콤플렉스·질투·멸시라는 감정이 있다. 현 정권의 노조·시민단체에 대한 분노와 청산의 감정이 걱정된다.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 주사파 빨갱이라서 싫은 건 적어도 전쟁의 아픈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세대의 감정일 테니 현 정권 핵심의 마인드는 아닐 것이다. 그럼 순수함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너무 실망해서? 노조·시민단체 등과 동시대를 살아오면서 같이 못해 미안했고 심정적인 지지를 했으나, 이제 기득권처럼 보이는 그들에게 반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현 정권은 끊임없이 이용할 뿐이다. 현 정권 핵심들은 사회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애초부터 세상은 살 만했고 노조·시민단체는 자기보다 못난 비딱한 집단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이런 자신들의 생각에 대한 자기합리화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도 안 되는 것들이 권력을 잡더니 꼴값을 떨었다고 말이다.

자기합리화가 남들에게 들키기 쉬운 이유는 무리한 논리를 끌어오기 때문이다. 노조·시민단체가 무오류 집단도 아니지만 이들을 때려잡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미래가 없다는 논리는 당황스럽다. 하나만 보자. 미국 경제성장 최전성기인 1940~1960년대에 노조가입률은 30%를 웃돌았으나 계속 떨어져 2000년 14%, 2021년에 10.4%이다. 한국은 1977년 25.4%에서 2000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10% 언저리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미국 및 선진국의 생산성 정체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정체의 원인을 찾아 경제학자들은 여러 가설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 노조는 핵심이 아니다. 국가 운영에 있어 언어는 정확하고 근거는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은 자신의 신념을 의심하지 않고 선의와 아집을 혼동하고 있다. 더욱 암울한 것은 자존심은 강하나 책임은 회피해야 하는 집단은 아집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십상이다. 내년 총선에 사활을 걸었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2년차 집권 여당이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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