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서 대리기사로 일하는 권모씨(50)는 지난해 9월 고객을 만나러 공유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져 팔 골절 수술을 받았다. 권씨는 입원한 17일 동안 총 140만원의 상병수당을 받았다. 상병수당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권씨는 완쾌되지 않은 채 일을 하다가 또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병수당을 아예 받지 못했다.
플랫폼 노동자인 권씨가 상병수당 대상인 ‘취업자’가 되려면 고용보험 사업소득 기준(80만원)을 넘어야 했다. 그런데 권씨는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일했기에 평소보다 소득이 줄었다. 결과적으로 권씨가 상병수당으로 지급받은 금액은 세 달간 치료와 생활유지에 쓴 비용 중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과 건강세상네트워크,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국민건강보험노조,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의료연대본부 등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병수당 1차 시범사업 평가토론회를 공동으로 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등으로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6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상병수당 1차 시범사업을 시작해 이달에 마친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부터 내년 6월까지 2차, 내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3차 시범사업을 한 뒤 상병수당 제도를 본격 도입할 계획이다.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경제활동이 불가한 경우에도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다. 1차 시범사업은 지역마다 다른 3~14일의 대기기간 후 일정 기간 하루에 최저임금 60% 수준의 급여를 보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상병수당 ‘대상’에 대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발제를 맡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1차 사업의 대상자인 ‘모든 취업자’는 시범사업 지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 중 만 15세 이상~만 65세 미만 취업자를 가리키는데, 외국인 노동자는 배제했다고 지적했다. 최 활동가는 “회사의 승인 없이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알고 있다고 답한 이는 28.8%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은 활용하기 어려운 제도”라며 “이런 상황에서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국민으로 제한된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최 활동가는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1위인 한국은 노인 소득 중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6년 기준 42.8%로 유독 높은데, 정작 노인 노동자를 상병수당 대상에선 제외했다고도 지적했다. 앞서 권씨처럼 불완전한 고용관계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 등에도 보장을 더 넓혀야 한다고 했다. 시범사업의 대상인 ‘취업자’는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등 가입을 기준으로 하는데, 2021년 8월 기준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52.6%, 건강보험 직장가입률은 50.3%에 그친다.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2차 시범사업에선 되려 대상자 기준이 더 축소된다. 1차 사업에서는 소득 수준에 대한 제한이 없었지만 2차에서는 소득 하위 50%의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복지부는 1차 사업 신청자의 75%가 소득 하위 50%였음을 근거로 새로운 조건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1·2차 사업에서 시행한 5가지 모델을 비교·분석해 본 제도를 설계·도입하겠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2차 사업의 ‘저소득층 선별 지원’ 기조가 본 사업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최 활동가는 “소득 상위 50%를 배제하는 것은 신청자 가운데 나머지 25%, 그리고 제도를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제하겠다는 의미밖에 되지 못한다”며 “이미 기존의 제도로부터 차별받고 배제당한 노동자들을 상병수당 제도 대상자 범위에 포함하지 않는다면 형평성·보편성 차원에서 보편적 건강보장에 도달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