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라인 동일시하는 사람들
‘온라인 세상은 진심’으로 여겨
더 많은 선택받기 위해 거친 표현
일부 논쟁은 오프라인으로 ‘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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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1세대에 ‘책임감’ 강조
“온라인 내 싸움 ‘무의미’ 알려야”
온라인 커뮤니티, 영혼들의 사회
박현수 지음|갈무리|288쪽|1만7000원
‘96만개, 250만개.’
지난 7일 기준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하루 게시글과 댓글의 숫자다. 1분에 평균 666개의 게시글이 올라오고, 1736개의 댓글이 달린다는 뜻이다. 온라인 세상을 ‘허상’이라고 치부하기엔 엄청난 역동성을 보여주는 숫자다.
온라인 세상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무수하다. 2008년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 사건과 광우병 논란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출발했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수놓은 깃발도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넷우익’ ‘넷페미’ 등도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논쟁이다. 2020년 4월 총선 이후 불거진 개표 조작 음모론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불거졌다. 최근에는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1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 갤러리’에서는 온갖 사이버 괴롭힘과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범죄가 벌어졌다. 온라인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울증 갤러리’에서 벌어지는 그루밍과 괴롭힘을 이해하지 못한다. ‘차단’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세상은 진심’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영혼들의 사회>는 20년 넘게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해온 저자 박현수가 경험에 근거해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와 통찰을 적어내려간 책이다. 교수 등 전문가들이 아닌 20년 넘게 온라인에서 적극 활동한 ‘키보드 워리어’가 직접 쓴 글이라는 점에서 색다르다. 1987년생인 저자는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 ‘pgr21’로 온라인 유저 생활을 시작했다. 거의 ‘온라인 할아버지’급이다. 저자는 오프라인 세상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온라인 분석에 실망해, 독립 연구자로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와 탄생·재생산을 탐구했다.
책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특수성을 ‘텍스트성’으로 규정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글을 통해 모든 사건이 관찰되고 보존된다. 이 때문에 모든 사건에 역사성이 부여되고,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큰 어려움 없이 여론조작이 이뤄지기가 쉽다. ‘텍스트성’은 또한 오프라인의 다양한 조건들을 생략할 수 있어 ‘너와 나’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놓인다. 저자는 이를 ‘강요된 평등’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온라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시기에 따라 세대를 구분한다. 기술 발전에 따른 구분이기도 하다. 1세대는 PC통신 시절로, 주로 문화자본을 풍족하게 가지고 있던 고학력 성인 남성들이 주 이용층이었다. 이들은 온라인을 오프라인의 연장선으로 생각했고 닉네임이 당연시됐다. 2세대는 초고속 인터넷이 시작된 시기 참여한 온라인 유저들이다. 스타크래프트, 리지니 등 게임 덕분에 10대 남성들이 대거 유입됐고, ‘선영아 사랑해’라는 티저광고로 유명해진 마이클럽 같은 독립 여성 커뮤니티들도 이때 시작됐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된 시기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처음 경험한 청소년 유저들은 일본 넷우익의 주장을 쉽게 수용하는 상황이었고 여기서 ‘헬조선’이라는 용어도 시작됐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3세대는 스마트폰 세대로 온라인 몰입 속도가 훨씬 빠르고 다양한 사람들이 대거 유입됐다. 오프라인으로 퍼지는 굵직한 사건들이 대거 일어난 때이기도 하다. 이제 닉네임도 없이 그저 익명으로 활동한다. 무엇보다 3세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일선상에서 인식하기 시작한다. 4세대는 온라인을 오프라인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첫 세대다. 저자는 3세대 이후 이용자는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보다는 게시판의 ‘좋아요’를 얻기 위해 활동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게임이나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과 현실에서 만나 싸우는 ‘현피’를 두고도 세대별 인식은 판이하다. 1세대에게 ‘현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저자 표현대로 하면 “찌질이들의 전유물”이다. 그러나 3세대에게 온라인상의 다툼은 오프라인에서의 그것과 마찬가지다. 온라인상의 다툼이 오프라인의 고소전으로도 이어진다. “현피는 더 이상 찌질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저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다툼을 ‘지분 싸움’으로 일관되고 자신있게 설명한다. 온라인상에서 얻는 ‘인지도’ ‘지지도’ ‘정치적인 몫’을 ‘지분’으로 정의한 저자는 세대를 넘어올수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거칠어지고 있는 다툼이 유저 간의 지분 싸움이라고 거론한다. 기존 커뮤니티에 새로 들어온 유저가 더 많은 선택을 받기 바라며 벌이는 논쟁들이 온라인 담장을 넘어 오프라인으로까지 흘러갔다는 것. 또는 기존 커뮤니티에 반발해 주목도를 끌려는 새로운 커뮤니티의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겨우 한두 명이 저지른 여론조작을 중요한 담론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엄청난 사회현상으로 분석하는 오프라인 침략자의 이야기는 헛웃음을 자아낸다”고도 했다. 저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벌어지는 ‘젠더와 정치’ 다툼도 실제로는 이념이 아닌 지분 다툼을 위한 선택이라고 추론한다.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대다수가 보드형 게시판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도 저자는 주목했다. 외국의 커뮤니티는 트위터처럼 스레드형인 경우가 많다. 스레드 유형은 정해진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거기서 의견이 형성되어 간다. 반면 보드형 게시판은 일단 많은 사람이 보게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구미를 당기는 제목을 통해 클릭을 유도해야 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보드형 게시판이 한국 온라인 이용자들을 더 빠르게 반응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과 참여적 성찰도 담겼다. 저자는 ‘책임감’을 강조한다. “유저 한 명 한 명이 이 시대의 창조주와 다름없다.” 기존 온라인 1세대를 향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서 끝없는 키보드 배틀을 통해 완충 작용”을 해달라고 하고, “온라인 내 싸움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이후 세대 유저들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오프라인의 기성세대에게도 “오프라인의 지식을 온라인으로 옮기며 그것을 온라인에 맞게 지식화하는 과정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요청한다. 저자는 온라인상에서 익명을 사용하지만 국가 주도의 닉네임을 발급해 온라인 얼굴을 만들어주자는 주장도 내놓는다.
이 책은 20년 넘게 온라인에서 활동한 경험자의 분석이라는 점이 최대의 장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찌질들의 이야기다.’ 요즘 세대들이 온라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돕는다. 다만, 정치와 젠더 등의 온라인상 갈등을 이용자들의 지분 다툼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은 다소 아쉽다. 오프라인 세상의 시대적 변화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책에서 이론적 공백은 지식인들이 채워달라고 했다. 지식인들의 활발한 토론이 기대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