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주디스 버틀러 지음·김응산 옮김
창비 | 220쪽 | 1만6800원
유명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철학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 두기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연대 가능성을 봤다. “나는 나 자신이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사람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나의 행동은 너의 생명을 지탱하고, 너의 행동은 나의 생명을 지탱하는 것이다.”
버틀러는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드러낸 세계의 불공정성과 윤리의 문제를 고민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상호 엮임’ 개념을 빌려와 “이 행성에 함께 사는 유기체로서 우리는 서로 엮여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팬데믹 상황에서 생명들은 계급이 나뉘어 차별받았다. 개발도상국, 유색인종, 빈곤층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사망할 확률이 더 높았다. 미국인, 백인, 부자, 기혼자의 죽음은 더 슬프게 애도된다. 버틀러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취약계층을 외면한 채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방역조치를 완화했다고 본다. “식량, 거주지, 의료보험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폐기 가능성을 감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어떤 이들의 생명은 보호하고 다른 이들의 생명은 보호하지 않도록 조직돼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다.”
사람은 타인과 서로 얽혀 삶의 조건을 공유하면서 살아간다. 버틀러의 주장은 인간이 동물, 기후, 환경 등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와도 얽혀 있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는 팬데믹을 전환의 계기로 삼아 경제우선주의에서 벗어나 ‘살 만한 삶’을 느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상호의존성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형태의 상호의존성을, 즉 급진적 평등의 이상을 가장 명확하게 체현하는 상호의존성을 찾아내고 만들어내고자 집단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