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사에 “양국 관계 문제점 어딨나 되돌아보길”
한·미 초밀착 기조에 대한 불만 농축된 듯
전문가 “큰 맥락에서 균형 외교 필요”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8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환담 중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초치에 자국 주재 정재호 한국대사 초치로 맞불을 놓았다. 감정 섞인 날 선 반응을 주고받으면서 한·중 관계가 얼어붙는 모양새다. 미국 밀착 외교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려됐던 중국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11일 “눙룽 외교부 부장조리가 전날(10일) 정 대사와 회동을 약속하고 만나(웨젠·約見) 한국 측이 싱 대사와 이재명 야당 대표의 교류에 부당한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교섭을 제기하고 심각한 우려와 불만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웨젠’은 중국 외교부가 타국 외교관을 부르거나 별도의 장소에서 만나 항의하는 것을 뜻하는 외교 용어다. ‘자오젠(召見·불러서 만나다)’에 비해서는 수위가 낮지만 한국 외교 용어로 번역하면 ‘초치’에 해당한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눙 부장조리는 정 대사에게 “싱 대사가 한국 각계 인사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의 업무”라며 “한국 측이 현재 중·한 관계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되돌아보고 진지하게 대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양국 관계의 문제점을 한국 정부의 미국 초밀착 기조 탓이라는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이 자리에서 정 대사도 눙 부장조리에 엄중하게 항의했다고 전했다. 대사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주한 중국대사가 우리나라 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이며 사실과 다른 언행을 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엄중한 항의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앞서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현재 중·한 관계가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 데 대해 깊이 우려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솔직히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싱 대사는 이어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자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를 베팅하는 이들이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즉각 반발했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다음날인 지난 9일 싱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주한대사가 다수 언론매체 앞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은 비엔나 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날 뿐 아니라 내정 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 차관은 이어 “싱 대사의 이번 언행은 한·중 우호 정신에 역행하고 양국 간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것”이라며 “외교사절의 본분에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한다.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박진 외교부 장관도 “(싱 대사의 발언은) 도를 넘었다”며 “외교 관례라는 게 있고 대사의 역할은 우호를 증진하는 것이지 오해를 확산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양국의 감정 섞인 신경전은 표면적으로 싱 대사의 발언에서 비롯됐지만 근본적으로는 미·중 사이에서 미국과의 결속을 택한 한국 정부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농축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상 외교를 통해 한·미·일 안보 협력 수위를 높이는 과정에서 중국이 예민해 하는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가 수차례 언급됐고 중국 측의 누적된 불만이 싱 대사의 거친 언사로 표출됐다는 지적이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학교(국제학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싱 대사가 기자회견이 아니라 우리 야당 대표와 만나 (한국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분명 과도한 측면이 있다”면서 “싱 대사의 발언과 초치 같은 작은 동작들보다는 큰 맥락에서 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중국은 지금까지 나름대로 한국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미·중 사이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싱 대사 개인의 행위만을 가지고 잘잘못을 가린다면 한국 외교가 또 한 번 대중 정책에서 실수하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