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삼권분립·성평등 뒷걸음친 대법관 제청 유감스럽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9일 새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와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오른쪽). 대법원 제공

김명수 대법원장이 9일 새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와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오른쪽). 대법원 제공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9일 새 대법관으로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53·사법연수원 25기)와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57·21기)의 임명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대통령실이 임명 거부를 시사한 정계선·박순영 판사는 결국 제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윤 대통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 수 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대통령이 대법관 인사에 개입함으로써 삼권분립 원칙이 훼손됐고, 대법원 재판의 독립성과 신뢰성도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김 대법원장은 두 후보자를 제청하며 “대법관 구성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 기대를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제청으로 대법원 구성은 종래의 ‘서오남’(서울대 출신·50대·남성) 체제로 더욱 획일화될 위기에 처했다. 권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1999년 판사로 임용돼 2006년까지 일선 법원에서 재판 업무를 담당했다. 서 부장판사도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1995년 판사로 임용돼 대법원 재판연구관·서울회생법원장 등을 거쳤다. 현재 대법원은 김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4명 중 서울대 출신이 8명, 남성이 10명(여성 4명)이다. 그러나 오는 7월 퇴임하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후임으로 두 후보자가 임명되면 서울대 출신은 10명으로 늘어나고 여성은 3명(민유숙·노정희·오경미)으로 되레 줄어든다.

입법·행정·사법부 가운데 사법부는 유일한 임명직이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뽑지만 대법관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다. 사법부에 권력 견제와 사회적 약자·소수자 보호 역할을 맡기기 위한 헌법적 결단이다. 이런 취지를 충실히 살리려면 무엇보다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다양해야 한다. 특정 성별, 특정 세대, 특정 대학 출신이 절대다수를 점한 대법원은 각계각층의 이해를 고루 반영할 수 없고, 그 자체로 반민주적이다.

이번 대법관 제청은 과정·결과 모두 문제가 있다. 1차 책임은 김 대법원장이 져야 한다. 대통령실 압력을 막지 못했고,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실천하지 못했으며, 사회의 성평등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윤 대통령 재임 동안 대법원장 및 대법관 14명 가운데 13명이 교체된다. 계속 이런 식으로 대법관이 제청·임명되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인사청문회를 열어 적격성을 심사하고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한다. 국회는 대법관 후보자의 도덕성·자질은 물론이고 제청 과정까지 철저히 따져야 한다. 오는 9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김 대법원장도 남은 임기 사법부 수장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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