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플래시’···자신과 DC를 구하다

오경민 기자
DC의 새 영화 <플래시>에서 히어로 플래시(에즈라 밀러)는 빛보다 빠른 스피드, 전기 방출, 물체 투과, 자체 회복 등의 능력을 가졌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DC의 새 영화 <플래시>에서 히어로 플래시(에즈라 밀러)는 빛보다 빠른 스피드, 전기 방출, 물체 투과, 자체 회복 등의 능력을 가졌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마블에 비해 고전적 혹은 고리타분하다는 이미지를 가진 DC가 새롭고 ‘힙’한 히어로로 돌아왔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고담시를 가로지르는 ‘플래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플래시>(연출 안드레스 무시에티)가 14일 개봉한다. <블랙 아담> <샤잠! 신들의 분노>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등 DC, 마블을 막론하고 히어로물이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DC확장유니버스(DCEU)의 문을 닫는 <플래시>가 히어로 액션의 흥행을 이끌지 주목된다.

플래시의 본체는 경찰청에서 법의학자로 일하는 배리 앨런(에즈라 밀러)이다. 불안과 자조를 안고 사는 배리는 자주 가는 카페나 직장에서 할 말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제대로 된 데이트 신청도 해본 적 없어서 우연히 첫사랑을 만나면 삐걱댄다. 배트맨, 원더우먼 등과 저스티스 리그에서 히어로로 일할 때도 ‘잡일’을 도맡아 한다.

배리는 살인 누명을 쓴 아버지의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이자 배리의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배리는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복원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아버지를 도저히 감옥에서 빼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 전속력으로 달리던 배리는 자신이 먼 과거로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이 능력을 이용해 어머니와 아버지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어머니를 살린 배리는 현재 시간으로 돌아오던 중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고 미지의 시공간으로 내던져진다. 살아 있는 엄마를 만난 반가움도 잠시, 그 세계에 존재하는 18세 배리를 만나 당황한다.

배리는 자신이 시간의 한 축 위에서 단순히 과거-현재를 이동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바꿈으로써 별개의 시간 축 위에 있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도착했음을 깨닫는다. 예정된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나지만 디테일이 다르다. 크립톤 행성의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이 지구를 침공해 오지만 원래 세계보다 때가 한참 이르다. 지구를 구해야 하지만 이 세계에는 원더우먼도, 아쿠아맨도, 저스티스 리그도 없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히어로인 배트맨(마이클 키턴)은 은퇴 후 노년을 즐기고 있다. 무엇보다 오리지널 배리는 18세 배리와 케미가 썩 좋지 않다. 엄마가 살해되고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트라우마 없이 자란 이 세계의 배리는 너무 해맑고, 모든 일에 장난스럽다. 오리지널 배리는 18세 배리를 설득해 우주의 붕괴를 막고자 한다.

존재감 있는 빌런이 없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다. 조드 장군 등이 등장하긴 하지만 배리가 진짜 상대해야 할 이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다. 그는 스스로의 집착과 그것이 낳은 실수로부터 세계와 자신을 구해야 한다. 그것은 히어로뿐 아니라 보통 사람의 과제이기도 하다. 히어로 영화에서 액션의 스펙터클보다는 히어로의 개인적인 이야기, 감정이 중요하다고 말해온 제임스 건 감독이 언행일치를 보여줬다. 배리의 서사가 마음을 울린다.

액션은 예상했던 대로 좋은 만듦새를 보여준다. 눈으로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액션을 뒤집어 오히려 느린 움직임으로 화면을 채운 것은 스피드스터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와의 차별점이다. <플래시>는 누구보다 빠른 배리의 시점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세상을 비춘다. 다소 희한한 방식으로 세상을 구하는 위트까지 더해져 <플래시>만의 리듬과 분위기를 완성했다.

배리를 연기한 에즈라 밀러의 1인 2역도 자연스럽다. 헨리 브라함 촬영감독은 “1인 2역이 사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촬영 자체를 두 명의 배우가 진행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카메라를 고정한 상태에서 배우만 위치를 바꿔가며 두 번씩 찍는 방식을 버리고,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대역과 함께 촬영했다. 이후 대역의 몸에 밀러의 얼굴을 입히는 후반 작업을 했다.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새로운 세계에 떨어진 오리지널 배리(왼쪽)는 18살의 해맑은 배리를 만나 당황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새로운 세계에 떨어진 오리지널 배리(왼쪽)는 18살의 해맑은 배리를 만나 당황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주인공을 연기한 에즈라 밀러의 과거 행적은 흥행 변수다. 밀러는 폭행, 가택 침입 등 혐의로 기소되고 미성년 여성을 상대로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8월 성명에서 “복잡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지속적인 치료를 시작했다”며 과거 행동을 반성하고 사과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국내 이용자들의 불매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영화는 개봉 이틀 전인 12일부터 예매율 1위에 올랐다.

<플래시>는 DCEU의 마지막 영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만든 제임스 건 감독을 공동대표로 영입한 DC스튜디오는 세계관을 전면 개편해 DCEU를 DC유니버스(DCU)로 리부트하겠다고 밝혔다. 헨리 카빌이 <슈퍼맨>에서 하차하는 등 굵직한 변화가 예고됐다. <플래시>는 ‘멀티버스’를 도구로 사용해 그간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DCU로 넘어갈 발판을 마련했다.

반가운 옛 얼굴들이 등장한다. 팀 버턴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활약한 마이클 키턴이 31년 만에 배트맨으로 돌아온다. 슈퍼맨으로 캐스팅됐다 불발된 것으로 알려진 몇몇 유명 배우가 나오기도 한다. 러닝타임은 144분. 쿠키 영상이 하나 있다.

새로운 세계에 오리지널 배리의 친구 배트맨(밴 애플렉)은 없다. 대신 조금 더 나이 든 배트맨(마이클 키튼)이 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새로운 세계에 오리지널 배리의 친구 배트맨(밴 애플렉)은 없다. 대신 조금 더 나이 든 배트맨(마이클 키튼)이 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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