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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이지와 가오카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요즘 이른바 ‘쿵이지(孔乙己) 문학’이 유행이라고 한다. 쿵이지는 중국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루쉰(魯迅)이 1919년 발표한 동명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이다. 소설 속 쿵이지는 지식인 행세를 하지만 10년은 깁지도 빨지도 않은 너덜너덜한 장삼(長衫)을 입고 다니며 돈이 없어 주막에서 서서 술을 마시는 가난하고 비루한 삶을 사는 인물로 묘사된다. <쿵이지>는 청나라 말기 신분에 얽매이며 육체노동을 거부하는 봉건적 지식인과 유교 사상에 대한 비판을 담은 소설이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그런데 100년도 더 지난 사회비판적 소설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 ‘쿵이지 문학’이라는 말이 온라인에 신조어처럼 등장한 건 올해 초다. 고학력 실업자가 늘면서 젊은이들이 신세 한탄을 하듯 올린 짧은 글들이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다. 올해 초 한 누리꾼이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微博)에 올린 글이 시발점이었다. 그는 “학벌이 디딤돌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그것이 내려올 수 없는 받침대라는 것을 발견했고, 결국 장삼을 벗지 못하는 쿵이지와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적었다. 이후 온라인에는 “쿵이지를 비웃었는데 내 자신이 장삼을 못 벗는 쿵이지가 될 줄이야”라거나 “아예 대학에 가지 않았으면 공장에서 나사를 돌렸을 것”이라는 등 한탄조의 글들이 유행하며 쿵이지 문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중국의 대학 진학률은 이미 80%를 넘어섰다. 지난해 대학 입학시험인 가오카오(高考) 응시자의 92.9%가 대학에 진학했고, 올해도 입학률이 85%를 넘을 것으로 중국 언론은 추산한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이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반면 10%대 고성장 시대를 마감하면서 일자리를 늘리는 건 한계에 부딪혔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대학 졸업생들은 더 나은 대우와 기회를 보장받고 시간을 벌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고학력자들이 늘수록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느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청년들은 “지금 석사학위는 과거 학부 졸업장 정도의 위상밖에 갖지 못하고, 앞으로는 박사학위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고 한탄한다.

지난 4월 기준 중국의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0.4%로 사상 처음 20%를 넘어섰다. 중국에서 전문대 졸업 연령은 평균 21세, 대학 졸업 연령은 평균 22세다. 대졸자 5명 중 1명은 미취업 실업자라는 얘기다. 7월이면 졸업 시즌을 맞아 역대 최다인 1158만명의 대졸자가 추가로 쏟아져 나온다. 지난주 치러진 올해 가오카오 응시자는 1291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시 인구보다 많은 인원이 입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명문대 입학이 돈 없고 ‘빽’ 없는 청년들이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계층 사다리로 인식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그 사다리가 쿵이지가 걸친 장삼처럼 벗어버릴 수 없는 굴레가 된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에서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체제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의 사회체제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청년들에게 희망이 없는 사회는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우리에게도 남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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