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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평균 3000명가량이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해 새내기 의사가 된다. 그러나 지역병원, 특히 필수 진료과목에서는 의사를 구하기가 여전히 힘들다. 연봉 수억원을 보장해도 오겠다는 의사가 없고, 이 때문에 진료를 중단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구인난’을 해결할 대책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의과대학 정원을 늘려 의사 수를 늘리는 것, 다른 하나는 지역·필수과목에서 의사가 일할 수 있도록 의료정책(인프라·보상체계)을 개선하는 것이다. 환자들이 의료기관 문 앞에서 밀려나는 최근의 상황을 고려하면, 어느 쪽을 우선할 게 아니라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어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18년째 동결된 의대 정원 ‘3058명’의 벽이 깨지는 것이다. 향후 주요 쟁점이 될 의대 정원 확대 ‘규모’와 ‘방식’에 관해 2회에 걸쳐 짚어본다.
우선 ‘얼마나 늘릴지’부터 논의해야 한다. 복지부가 2000년 의약분업에 따른 감축 인원(351명)을 기준으로 500명대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확정된 것은 없다. 앞서 2020년 정부는 ‘400명씩 10년간 4000명을 늘리는 안’을 추진했다가 의사단체의 반발로 중단했다.
의료이용 수요와 의사인력 공급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의대 정원 규모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와 의협은 지난 회의에서 ‘미래 의료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한 필요인력 수급 추계’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이달 중 전문가 포럼도 열 예정이다.
“인력 부족 심화”vs“과잉 우려”…의사인력 수급 추계 중요할 듯
정부와 시민사회 쪽은 ‘현재 의사가 부족하고 더 심해질 것’이라고 본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5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고령화가 되고 건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니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분석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보건통계 2022’에서도 2020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는 2.5명으로 OECD 평균(3.7명)보다 훨씬 낮다.
반면 의협은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추가 배출되는 의사는 매년 늘어나고 있어 의사 부족이 아닌 오히려 의사의 공급 과잉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1월1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의대 정원 확대 촉구에 대한 입장문)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은 필요인력을 추계할 근거자료도 달리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 연구기관이 추계한 수치(의사인력 부족 전망)를 우선하겠다고 했고, 의협은 산하 의료정책연구소를 통해서 다른 수치(의사인력 과잉 우려)를 제시할 예정이다.
복지부가 의뢰해 보사연이 진행한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의사 1인당 업무량이 2019년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2030년 1만4334명, 2035년엔 2만7232명의 의사 공급 부족이 발생한다.
![[‘3058’을 넘어서①]2035년에는 의사 2만명 부족하다는데···의대 정원, 얼마나 늘려야 할까](https://img.khan.co.kr/news/2023/06/14/news-p.v1.20230614.3dab7099fdfb41afb2f964bd0ea277bc_P1.jpg)
2035년 기준 진료과목별 의사 부족 인원은 내과·소아청소년과·신경과 등 내과계 1만42명, 외과·정형외과·산부인과 등 외과계 8857명, 마취통증의학·병리학 등 지원계 7450명, 일반의 1032명 등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보건경제학) 교수팀의 ‘의사인력의 중장기 수급 추계와 정책대안’(2020년 9월,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논문을 보면, 향후 부족한 의사인력 규모는 2030년 2만5746명, 2040년 2만7013명, 2050년 2만8279명 등으로 예측됐다. 연구진은 2001~2018년 의사인력 공급지수(면허등록)와 의사인력 수요지수(건강보험 의료이용량)를 만들어 계산했다. 2001년과 비교해 2018년엔 공급이 수요보다 17.7% 부족한 것으로 봤다.
이 수급모형을 토대로 필요한 의대 정원을 추계한 결과, 2020년부터 현재보다 정원을 1000명 가량 늘려도 2050년까지 의사인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어려운 것으로 예측됐다. 2040년쯤 수급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입학정원을 최소 5000명, 2035년에 해소하려면 최소 6000명으로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지에 실린 보고서 ‘의사인력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2017년, 이혜연)는 병원(병상)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의사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의사 수는 매년 3000명 넘게 증가하고 의사의 대다수가 55세 미만(2021년 기준 77%)이어서, 향후 20년 활동인력이 충분하다고 봤다. OECD가 기준으로 삼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15년 2.27명에서, 2025년 2.95명, 2035년 3.91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향후엔 OECD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사 공급을 대폭 늘려야 지역·필수진료과목 인력난도 해결”
지역과 전공, 젊은 의사 쏠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동의한다. 의대 정원을 당장 늘린다고 해도 교육연한(6년)을 고려하면 10년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우선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놔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경실련과 전국보건의료노조는 “1000명 이상을 증원하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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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2035년에 의사 2만7000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추계가 나와 있다. 어렵게 볼 것이 아니라, 산술적으로 한해 2700명씩 10년간 더 뽑으면 의사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그 시점에서 해소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진현 교수는 “의대 입학정원은 단계적 증원보다 5000~6000명 규모로 단기간에 일괄 증원한 다음 2030년 이후 수급상황에 따라 적절히 감속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의사 배치 불균형 문제는 총인원이 충분해도 발생하는 문제다. 그런데 총인원이 부족하면 훨씬 더 심각해진다”며 “저수지에 물이 많아야 가까운 논을 채워주고 멀리 있는 논에까지 물을 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어 “한국은 의료의 90% 이상을 민간이 담당하고 의사들의 배치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의 수요-공급 조정 기능에 기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