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까지 시장화하겠다는 위험천만한 대통령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복지에 대한 ‘과감한’ 속내를 거침없이 쏟아놓았다. 돌봄 등 사회서비스에 대해 “시장화, 산업화가 되고 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며 “시장화되지 않으면 성장동력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뜬금없이 방위산업과 국방비의 관계를 언급하며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서비스도 마찬가지 논리”라고 했다. 대체 무슨 뜻인가.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필자만 이해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위안 삼아야 할까. 대통령 발언 직후 비판이 이어졌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사회보장제도는 자본주의 경쟁사회가 돌봐주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경쟁 체제 도입은 어불성설”이라고 직격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복지를 방산처럼 한다? 무슨 말인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정의당도 “과도한 시장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복지정책인데 이것을 다시 시장화하겠다는 것은 사실상의 국가 역할 포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이날 ‘사회서비스의 고도화 방안’도 발표했다. 취약계층 위주의 사회서비스를 양적·질적으로 확대해 중산층도 일부 자부담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론 서비스 질 향상을 내세웠지만, “국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해줄 테니, 기업들이 투자하고 추가적인 서비스를 가미해 유망 산업으로 키워라, 필요한 사람들은 돈을 내고 알아서 ‘구입’하라는 의미”라는 해석과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작 이날 회의에선 복지 규모나 분배 방식 등 복지 전략의 중요한 사항들은 거론되지도 않았다.

설사 액면 그대로 서비스의 질을 위해서라 치더라도, 민간의 경쟁 체제가 저절로 서비스의 질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여러 연구와 사례들로 보고되고 있다. 시장의 속성상 최소한의 투자로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돈 되는 부가서비스에 치중할 것이 불 보듯 하다. 서비스 가격은 올라가고 경제적 약자부터 사회서비스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것이 합리적인 예측이다. 시민들이 필수서비스에 대해 공공의 개입과 투자를 원하는 이유다. 보육에서 노인요양까지 국공립 시설의 엄청난 대기줄과 경쟁률을 보면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민간의 경쟁이 아닌 공공성 강화와 투자다.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전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2.6%에서 2.7%로 상향조정했지만, 한국은 이례적으로 성장률 전망치가 거듭 낮아지고 있다. 하반기로 갈수록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던 한은과 정부의 호언은 언제부터인지 쑥 들어갔다. 경기 둔화 속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은행 연체율이 급등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계층에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엔 전기·수도요금 몇만원이 아쉬워 찾아오는 이들이 몰린다고 한다. 개인파산이 급증하고 전당포를 찾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어려울수록 필요한 것이 복지 확대인데, 정부는 복지마저 시민들이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복지부는 돈을 더 내면 고품질의 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가격탄력제 시범사업을 하반기 중 시행하겠다고 한다. 음식점 메뉴도 기본메뉴만 있다가 ‘특’자가 붙은 고급형이 생기면 상향 평준화가 아니라 기본메뉴가 나빠지기 십상이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 등장한 ‘사회서비스 고도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지 민영화, 시장화의 다른 말이라는 윤곽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짐작일 뿐, 정확한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장기요양서비스 시장이 20년 내로 5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큰 장이 서기 위한 규제완화 방안, 자본을 댈 만한 대규모 금융회사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세금으로 급여 항목 비용을 지원하고, 비급여 항목은 개인들이 지불하는 의료서비스처럼, 사회서비스도 국민이 모든 비용을 치르게 될 공산이 크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지만 공공 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OECD 최하위 수준의 ‘복지 포기 국가’다. 재가 장기요양서비스의 경우 제공 기관 2만1334곳 중 2만1208곳(99.4%)을 민간이 운영 중일 만큼 사회서비스의 민간 비중은 극단적이다. 그런데도 ‘고도화’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손톱만큼의 공공부문마저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익은 사유화, 비용은 사회화.’ 민영화의 폐해에 매번 반복되는 이 뼈저린 교훈을 되풀이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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