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란봉투법 힘 실어준 대법 손배 판결, 이제 국회가 답해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가 금속노조 상대로 제기한 2009년 파업 손배 소송의 대법원 선고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가 금속노조 상대로 제기한 2009년 파업 손배 소송의 대법원 선고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수많은 노동자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에 사법부가 경종을 울렸다. 대법원은 15일 현대자동차가 파업을 벌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노동자 개인 손배 책임을 낮추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쟁의행위를 결정·주도한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의 책임을 동일하게 보는 것은 노동자들의 헌법상 권리인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정당성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0년 11~12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이며 울산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했다. 현대차는 이로 인해 공정이 278시간 중단됐다며 파업 참여자 29명을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2심은 조합원들이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참여한 만큼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급박한 쟁의행위 상황에서 조합원에게 쟁의행위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쟁의행위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이상 그 정당성에 의심이 간다고 해도 노동자 개인이 노조 지시에 불응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쌍용자동차가 2009년 정리해고에 반대해 ‘옥쇄파업’을 벌인 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옥쇄파업이 위법인 점은 인정했지만 쌍용차가 파업과 관계없이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돈까지 배상액에 포함시킨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은 판례로 정립돼 유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뒤 본회의 회부를 앞두고 있다. 이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규정해 간접고용·하청노동자를 지휘하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명확히 했다. 또 단체교섭·쟁의행위·노조 활동으로 손배 책임이 인정돼도 배상 의무자의 귀책 사유·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게 했다. 재계는 이런 내용의 노조법 개정이 사용자에게 불리하고 파업을 부추길 거라고 주장하지만, 쟁의행위를 즐기는 노동자는 세상에 없다. 대부분의 파업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제 국회와 행정부가 답할 차례다. 국회는 조속히 노란봉투법 입법 절차를 마무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마땅히 이를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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