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정기회의
정치가 사라진 ‘윤석열의 1년’ 다각적 분석과 평가 돋보였지만
MZ세대의 지지 철회 이유 등 차별화된 그들만의 생각·분석 안 보여
‘작은 학교 이야기’ 단순한 현황 전달 넘어 정책적 해법 제시 기대
구속 실패·수사 지체 등 검찰의 관점에 경도된 시각 여전
교제살인·교제폭력에 데이트폭력·보복살인 등 용어 지양해야
이달 말 열리는 경향포럼, 탈성장 담론 새 길을 모색하는 장이 되길

경향신문 독자위원회 2023년 6월 정기회의가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진행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경향신문 독자위원회가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2023년 6월 정기회의를 열었다.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열린 회의에 곽경란(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김봉신(여론조사전문기업 조원씨앤아이 부대표), 박은정(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신지영(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이승환(한국공인회계사회 선임), 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김지원 위원(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경향신문에서는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이 함께했다.
회의에서는 <윤 대통령 ‘마이웨이’ 1년…정치가 사라졌다> 등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보도된 지난 1년 국정 평가 기획기사들에 대한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설문조사를 통해 취재한 <빼앗긴 집, 타버린 마음> 기획 시리즈는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학령인구 감소 문제를 다룬 <예정된 미래-작은 학교 이야기> 기획 시리즈가 건설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김춘식 = 경향신문이 저널리즘으로서 사회적 사안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른 신문들과 크게 달라 보인다. 특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취약계층 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서 힘없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지난 한 달 동안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도 있어 논의할 기사들이 많을 것 같다.
김지원 =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지난 1년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 점이 좋았다. 명확하게 정리된 비판점들을 담은 <윤 대통령 ‘마이웨이’ 1년…정치가 사라졌다>를 시작으로, 3대 개혁 점검 기사들, 대선 공약을 짚어준 <대선 ‘한 줄 공약’ 성적표, 탈원전 백지화 ‘이행 착착’…코로나 실질보상은 ‘없던 일’>, 소통의 문제를 지적한 <“탈권위” 출근하는 대통령 소통 작심삼일 ‘용심 시대’>까지 모두 시의적절한 기사로 평가된다. <‘아빠 찬스’ 등 줄낙마…김성한 교체는 ‘미궁’ 자질 논란에 검증 부실, 인사 불신 키운 1년>은 표를 효과적으로 사용했고, <바이든 방한 때 53% 찍고, ‘날리면’ 논란에 24% 최저>도 그래프와 함께 주요 사건을 빨간 글씨로 강조해 잘 정리했다. 다만 지지율 변화의 의미에 대한 해설이 더해졌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5월9일자 <중도층의 ‘윤 정부 1년’ 평가는…챗GPT “갈수록 실망, 신뢰 회복 필요”>는 ‘객관적’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시도만 보일 뿐, 기사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았다. 5월25일자 <미 보건당국 “SNS, 10대 정신건강에 치명적” 경고> 기사는 비판적 시각 없이 단순 전달에 그쳐 아쉽다. SNS가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과거 텔레비전이나 게임과 관련해 제기됐던 비판과 유사하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주장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 미디어 학자 등에게 문의해보고 기사를 작성했더라면 어땠을까 한다.
조상식 = 학령인구 감소 문제를 다룬 기획 시리즈 <예정된 미래-작은 학교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현재 교육계의 첨예한 이슈이고 해법을 찾기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시리즈 앞선 회차의 내용은 현황 중심으로 이뤄졌다. 후반부는 정책 제언이 예고돼 있는데 기대가 된다. 5월29일자 <‘성평등 용어 삭제’ 논란만 빚은 정책까지…성과자료집 ‘셀프 칭찬’으로 채운 교육부>는 비판의 방향도 적절했고 논점도 잘 정리한 것으로 평가한다. 5월15일 스승의날을 맞아 교사들과 관련된 많은 기사들이 나왔다. 주로 학교 현장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뤘다. 스승의날 정도는 모범적인 스승이나 학교 현장의 미담을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5월24일자 <아동학대 신고 남발에 ‘교사 면책권’ 필요할까> 기사는 교사 면책권을 놓고 대립되는 주장을 균형 있게 잘 다뤘다. 경향신문의 정체성에 맞는 기사 같다. 얼마 전 교육부가 각 시·도교육청의 교부금 사용내역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 정부가 교부금을 공격하기 위한 자료 수집 차원에서 시행한 감사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학령인구는 줄어드는데 교육청에 교부금이 비대하게 많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경향신문에서는 너무 객관적으로 다룬 것 같다.
김봉신 = 지난달에 한·일관계 관련 기사가 많이 나왔다. 그중 5월10일자 1면의 <“네오콘 환생한 듯 일방 외교 윤 정부, 위험제거 노력 없어”>라는 제목의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인터뷰는 과감한 전략은 있지만 디리스킹(위험제거)이 없다는 통렬한 분석과 설명력이 대단한 기사라 평가된다. 경향신문을 비롯해 언론에서 현 정부의 한·일관계 정책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런 외교행보에 대해 지식인 사회와 달리 여론조사를 보면 일반인들 사이에는 큰 저항적 흐름은 없어 보인다. 지난 정부에서 교착상태에 있었던 대일외교에 대한 균형심리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도성향 국민 중 일부에서는 지난 정부에서 경직됐던 대일외교를 이번 정부는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자는 이들이 있는 게 아닌가 한다. 현 정부가 이런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국민 여론적 기반도 분석하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5월9일자에 윤석열 정부 1주년 평가 기획으로 ‘MZ세대’를 인터뷰한 <“문 정부에 실망해 지지했는데 청년 정책 오히려 못해 철회”> 기사가 나왔다. 8명이나 인터뷰했는데, 각자의 주장을 대비시켜 주제별로 정리를 하든지 당초 어떤 부분에서 기대가 컸는데 왜 실망을 했는지 등을 좀 더 분석적으로 접근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같은 날 실린 챗GPT를 통한 윤석열 정부 1년 평가 기사도 누구나 얘기할 수 있는 자명한 내용들을 단지 챗GPT라는 권위를 빌려 얘기한 수준이어서 감흥이 없었다.
이승환 = 5월4일자 칼럼 <[문화와 삶] 급식왕을 위하여>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글인 줄 알고 봤는데, 실제 내용은 급식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위트 있게 돌려서 비판하는 글의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설문조사를 통해 분석한 <빼앗긴 집, 타버린 마음> 기획 시리즈는 이제는 조금씩 잊혀지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시 환기시켜준 기사다. 언론이 이런 식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치유 방안을 제시해주는 것은 바람직스럽다. 5월4일 데이터저널리즘 다이브에서 고위공직자들이 어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 조사한 콘텐츠를 내보냈다. 지난달 말 공개된 입법·사법·행정부 전·현직 고위공직자 2555명의 재산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독자들이 공직자 이름이나 주식명으로 주식 보유 현황을 검색할 수 있게 해줬다. 이런 방대한 데이터를 기사 한 꼭지로 쓰고 만 것은 좀 아까워 보인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위공직자와 주식의 관계를 분석하는 추가 기사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최근 논란이 커지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리 의혹은 심각한 문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경향신문 사설에서도 이 사안을 다뤘는데, 좀 더 날카롭게 비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박은정 = 윤석열 정부 1년 평가에 환경 분야가 없어 아쉽다. 현 정부 들어 설악산 케이블카 허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용산공원 오염 논란 등 환경 관련 실책들이 많았다. 경향신문이 그동안 이들 사안에 대해 단독기사는 물론 깊이 있는 기획기사도 다수 써왔는데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이를 총정리할 기회를 놓친 것 같다. 현 정부 지지를 철회한 MZ세대 8명을 인터뷰한 기사도 내용을 보면 이들이 청년 정책과 관련해 지지를 철회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세대와 차별화되는 MZ세대만의 생각이 보이지 않았다. 6월5일 세계환경의날을 맞아 환경부가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도 참석한 큰 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환경의날 슬로건이 플라스틱 퇴출인데 현 정부의 플라스틱 관련 정책은 전 정부보다 상당히 후퇴했다. 지난 정부에서 여야 합의로 마련한 플라스틱 관련 규제도 이 정부에서 다 유예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가 플라스틱 문제를 주제로 잔치를 벌이는 상황을 비판하는 기사를 기대했는데 짚어주지 않아 아쉬웠다. ‘성장을 넘어 - 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이달 28일 열리는 <2023 경향포럼>이 기대된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불안정한 지구, 한계에 도달한 자본주의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예고돼 있다. 국제사회는 탈성장 담론을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는데 한국은 현 정부 들어 더 높은 성장, 더 많은 개발 등에만 집중하고 있다. 경향포럼이 성장 담론을 넘어서는 모색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곽경란 = 5월6일자에 <검찰 대장동 ‘숨은 핵심’ 조우형 구속 실패…‘50억 클럽’ 수사 지체되나> 기사와 관련된 사안의 <늑장·부실 수사가 부른 ‘대장동 핵심’ 조우형 영장 기각> 사설이 있었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인신을 구속할 수 있게 하는 이유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거나 수사 절차를 무력화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구속은 범죄를 자백하도록 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고문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법원도 구속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압수수색도 신중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법원 안에서 나온다. 경향신문도 MBC에 대한 압수수색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경향신문이 그동안 검찰의 수사 관행에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며 구속을 동력으로 삼는 수사에 문제를 제기해왔는데 이번 기사의 제목을 보면 검찰 입장에서 구속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속 실패’ ‘수사 지체’ 등의 표현은 지극히 검찰 입장에서 본 시각이다.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언론이 검찰의 관점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속영장이 기각됐으면 영장 청구가 이유가 없었거나 불구속으로 수사하면 된다는 거다. 반면 수사가 늑장이고 부실했기 때문에 영장이 기각됐다는 취지의 사설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신지영 = 국가보훈처가 부로 승격되면서 박민식 장관이 임명되는 과정에 박 장관의 ‘전관예우’ 의혹이 논란이 됐다. 경향신문도 전관예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런데 전관이라고 해서 예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특혜를 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특혜는 비리나 범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관예우보다 ‘전관특혜’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교제하던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은 ‘데이트폭력’이 아니라 ‘교제폭력’으로 표기해야 한다.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는 범죄의 중대성을 희석한다. 경향신문은 최근 들어 교제폭력이라는 표현을 써왔다. 5월29일자 1면 기사에도 <비정상 대응이 부른 교제살인>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그런데 5월27일자 <데이트폭력 피해 여성 보호 못 받고 피살> 기사나 일부 사진설명에서는 여전히 데이트폭력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경향신문이 선도적으로 바꾼 용어를 일관되게 썼으면 좋겠다. 교제폭력이나 교제살인 등에 대해 ‘보복범죄’ ‘보복살인’이라는 표현도 쓰고 있는데 이 또한 지양해야 한다. 보복이라고 하면 사건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6월2일자에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룬 1면 톱기사에 빌라촌을 찍은 사진을 흑백으로 크게 썼다. 사진 한 장이 많은 희생자가 나온 전세사기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주며 경종을 울리는 것 같은 강한 감흥으로 다가왔다.
김춘식 = 정부의 외교 정책이 뜨거운 이슈가 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정치·외교 관련 수준 높은 기사가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데 5월3일자에 나온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인터뷰(“한국, 미국에 압도적으로 기울어…중·러와 외교공간 남겨야”)를 보면 윤석열 정부의 동맹 강화와 가치 외교가 방향은 맞지만 외교공간은 남겨둬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보수의 입장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평가한 기사다. 경향신문에서 보수 성향 전문가를 통해 윤석열 정부 정책을 진단하는 것이 시원한 맛은 없을 수 있겠지만 냉정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진보 매체에서도 보수 성향의 화제성 인물을 인터뷰하는 기사가 의미가 있다. 단, 수준 높은 질문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