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9일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박순애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쉬운 수능’ 발언으로 대학 입시에 혼란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교육부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당초 교육부 보고에 없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실은 교육당국에 대한 사정도 예고했다. 지난 1일 치러진 수능 모의평가가 어렵게 출제되는 등 대통령 지시사항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16일 전격 경질됐고,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해서는 감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수능의 ‘킬러 문항’이 사교육을 유발하고,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능을 쉽게 출제해 변별력이 떨어지면 그 부작용도 심각하다. 실력보다 운이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당장 올 하반기 반수생이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 논술·면접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이 분야로 사교육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중상위권 학생들은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컷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압박감이 더 커질 것이다. 수능을 쉽게 출제해 사교육을 잡고 공교육을 살릴 수만 있다면 역대 정부가 왜 이런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겠는가. 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수능 문제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1등부터 꼴찌까지 줄세우기를 하는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입시 정책이 사전 예고도 없이 대통령 발언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발표된 것도 문제다. 고등교육법은 대학입학전형 관련 사항을 정하거나 변경할 경우 최소 4년 전에 발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쉬운 수능 지침을 교육부에 오래전 하달했을지 모르지만 수험생이 알게 된 것은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이다. 지난 3월28일 발표된 ‘2024학년도 수능 시행계획’에도 수능이 쉬워지거나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은 없었다. 대통령의 느닷없는 발언으로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갑자기 유리해져 입시가 불공정해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윤 대통령과 교육부는 지난해에도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방안을 불쑥 발표했다가 호된 역풍을 맞았다. 입시는 고차방정식이다. 수시·정시 모집 체계나 내신 반영 등 입시 전반에 대한 조정 없이 쉬운 수능만 강조하는 것은 공교육 시스템을 오히려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교육 분야 문외한인 윤 대통령이 쉬운 수능으로 사교육과 교육불평등 같은 난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통령의 즉흥적인 한마디에 입시가 바뀌는 일은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