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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관치회야?”…주민자치회 조례 개정 시대 역행 논란

입력 2023.06.17 08:30

수정 2023.06.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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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추첨하던 자치위원, 읍·면·동장에 심사권 부여

지난 2019년 세종시에서 열린 ‘시민과 함께하는 마을계획 공유회’ 행사 / 이상호 기자

지난 2019년 세종시에서 열린 ‘시민과 함께하는 마을계획 공유회’ 행사 / 이상호 기자

[주간경향] 최근 개정된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안이 주민자치회의 실질적 자치권을 저해하고, 예전의 ‘관치(官治)’로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5월 행정안전부는 전국 17개 특·광역자치단체에 ‘2023년 주민자치회 표준조례 개정 안내서’를 전달했다. 표준조례는 지자체에 이를 바탕으로 기존 조례를 개정하라는 일종의 지침서다. 행안부는 주요 개정사항으로 ▲주민자치회 위원 선정방법 다양화 ▲주민자치회 위원 교육 자율화 ▲주민자치회 위원 자격 명확화 ▲간사 또는 사무국 근거 삭제안 ▲법인 또는 단체 등에 대한 지원 근거 삭제 ▲주민총회 및 자치계획 자율화 등을 제시했다.

행안부, 표준조례안 개정 주민자치회는 2013년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시작됐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 대표기구이자 읍·면·동 민관협치기구다. 주민자치 사무뿐만 아니라 업무수탁, 자치계획 수립 및 실행, 주민총회 개최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번에 행안부가 발표한 표준조례 개정안에는 주민자치회의 자치 기능을 무력화하는 독소조항이 많다. 가장 문제가 되는 사항은 ‘주민자치회 위원 선정방법 다양화’다. 선정방식의 다양성을 강조했지만, 실상은 주민자치회를 읍·면·동장 영향력 하에 둔다는 우려다.

기존 표준조례안에서는 주민자치위원 선정방식을 희망하는 주민들을 공개 모집한 후, 무작위 추첨하도록 했다. 공개추첨 방식은 주민자치위원을 읍·면·동장이 심사해 선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18년 표준조례안부터 반영됐다. 이번 개정안은 이를 다시 되돌려 읍·면·동장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읍·면·동장이 위촉한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선정위원회를 꾸린 후, 해당 위원회가 주민자치위원을 추첨하거나 선출하도록 했다. 또 읍·면·동장과 수직적 체계에 있는 이·통장 및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당연직으로 둘 수 있도록 했다. 주민자치회가 관치로 역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주민자치위원 정수도 기존 ‘최소 30인 이상 구성’에서 ‘00명 이내’로 개정했다. 최소 정원이 축소되면서 읍·면·동장에 의해 발탁된 소수로만 주민자치회가 운영될 여지가 있다. 이용연 마을자치연구소 대표는 “이번에 개정된 표준조례안을 적용하면 10명으로도 주민자치회를 구성할 수 있다. 위원회 구성에 읍·면·동장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주민참여가 제한되면서 소수의 마을유지가 끼리끼리 주민자치회를 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표준조례안 강행, 지역주민과 마찰

행안부는 기존의 공개추첨 방식이 적극적 참여 의사가 있는 주민의 참여의사를 제약할 수 있다며 개정안 취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주민자치의 본질적 가치를 간과한 본말이 전도된 개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행안부 주장대로 주민자치회 현장에서 활동력이 있는 주민들이 추첨에서 떨어지는 것을 두고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가 주민자치회가 공개추첨을 도입한 본질적인 이유를 앞설 수는 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황종규 동양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읍·면·동장이 선호하는 주민들을 주민자치위원으로 위촉해 주민자치회가 주민들로부터 유리되는 경향이 있었다. 공개추첨으로 바뀌면서 특정한 사람들이 주민대표성이 있는 자리를 독점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됐다”라며 “물론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려는 주민들이 추첨에서 떨어지는 애로사항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애로사항이 ‘누구나 주민자치위원이 돼 주민대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치보다 앞서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행안부의 표준조례안을 지자체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표준조례안은 참고사항일 뿐, 지자체는 지역별 특성을 반영해 조례를 개정하면 된다. 그러나 자치단체장이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표준조례안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 주민자치회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온 자치단체장이나 지역정치인들은 행안부 표준조례안을 근거로 주민자치회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자치단체장이나 국민의힘이 다수의석을 차지한 기초의회는 더욱 검토나 숙의 과정 없이 행안부 지침에 따라 조례를 개정하기 쉽다.

이미 일부 지자체에서 표준조례안 개정안을 반영해 조례를 바꾸려다 지역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지난 5월 19일 경기도 화성시의회 홈페이지에는 ‘화성시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및 설치 운영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개정안은 주민자치회 위원 선발을 위원선정관리위원회를 설치해 면접을 통해 선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었다. 주민자치회 등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논란이 확산되자 화성시의회는 입법예고안을 다시 재논의하기로 했다.

화성시의 입법예고안은 행안부의 표준조례 개정안을 공청회 등 주민들의 의견수렴 과정 없이 그대로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윤희 전 화성시 마을자치센터장은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 제출 기한은 6일에 불과했고, 전부개정안을 올리면서 사전에 공청회도 없었다”라며 “행안부의 표준조례안은 말 그대로 지자체가 참고로 삼는 지침이다. 하지만 화성시처럼 시청이나 시의회가 제대로 된 검토나 주민 의견수렴 절차 없이 이를 반영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반발하는 지자체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서구에서도 주민자치회 위원 선정방식을 기존 100% 공개추첨에서 공개추첨 60%, 동장 추천 40%로 변경하는 안이 검토되면서 논란이 됐다. 대전 서구청 관계자는 “이 안을 추진한 것이 아니다. 의견 취합 과정에서 이러한 의견을 제시한 주민자치위원이 있었다. 조례개정은 논의 중이며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12월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를 폐지했다. /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12월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를 폐지했다. / 연합뉴스

서울시의 수상한 설문조사

행안부의 표준조례 개정안이 지자체 조례에 반영되면 주민자치회는 무력화될 것으로 보인다. 선정방식 변경 외에도 확대·강화해야 할 주민자치의 핵심 기능들이 축소됐다. 개정안은 기존에 의무조항이던 연 1회 이상 주민총회 개최·자치계획 수립을 주민자치회 활동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자율화했다. 주민총회는 동별로 성원 기준이 다른데, 지역에 따라서는 성원 충족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주민자치회가 제 역할을 하려면 주민참여를 촉진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하는데, 개정안은 오히려 주민자치회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용연 대표는 “주민총회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집행하도록 하는 절차를 없앴다”라며 “사실상 주민자치회 무력화다. 주민들의 자율성이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민사회에서는 행안부의 이번 개정안은 주민자치회를 무력화하려는 현 정부의 기조가 담겨 있다고 본다. 정부·여당이 주민자치회를 전임 정부의 사업으로 보고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해 ‘주민자치회 힘 빼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6월 5~14일 서울시가 주민자치위원 및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민자치회 시범사업 제도개편 설문조사’도 이러한 정부의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설문조사 항목의 상당수는 행안부 표준조례 개정안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에 대한 동의를 묻는 편향적인 문항 구성이 주를 이뤘다. ‘지역 여건에 맞게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등을 주민자치회 당연직 위원으로 위촉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현장에서 운영세칙을 정할 때 어려움이 있으므로 표준조례안처럼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줘야 한다’, ‘주민총회가 의무로 규정돼 주민자치회 활동에 부담이 되므로 주민총회 개최와 운영방법을 자율화해야 한다’ 등이 주요 설문 문항이었다.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의 이 같은 기조가 결국 주민자치회를 주민자치위원회로 재전환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주민자치회 이전에는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 기능을 담당했다. 1999년 시작된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 행정에 대한 심의·자문 정도에 그쳤다. 주요 사무도 주민자치프로그램 선정, 수강료 결정 등으로 실질적인 주민자치와 거리가 멀었다. 이에 따라 제도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주민자치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주민자치회가 도입됐다.

이후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자치회로 점차 대체됐다. 전국 3500여개의 읍·면·동 가운데 주민자치회를 설치한 곳은 2017년 47개, 2018년 95개에서 2019년 408개, 2020년 6월 기준 626곳으로 확대됐다. 2023년 현재 전국적으로 1370여개의 주민자치회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정부 이후 주민자치회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는 표준조례가 만들어지면서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됐다.

주민자치위원회로 퇴행?

현 정부의 기조는 이러한 흐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여기에는 시민단체를 적대적으로 보고 주민자치회 중간지원조직 또한 시민단체로 바라보는 정부·여당의 적대적인 시각도 반영돼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취임 1년 반 만인 2022년 12월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를 폐지하고 서울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운영을 종료했다. 서울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는 주민자치회 중간지원조직이기도 했다. 이번 행안부 개정안도 법인 또는 단체가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자치회 중간지원조직의 근거조항을 삭제했다. 이윤희 센터장은 “오세훈 시장 취임(2021년 4월) 이후 윤석열 정부도 시민단체 보조금 감사 등을 강하게 추진했는데, 이러한 기조가 이번 개정안에도 반영돼 있다고 본다”라며 “중간지원조직은 행정에 대한 독립성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데,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위원회로 회귀했다. 지난해 구로구는 주민자치회가 운영되던 4개 동을 주민자치위원회로 전환하고 중간지원조직인 구로구마을자치센터를 폐지했다. 황종규 교수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자치의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효능감이 높아지도록 해야 하는데, 주민자치 활성화 논의는 없고 주민자치회 힘 빼기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자치회를 무력화하려는 정부·여당의 움직임에 대항해 일부 지자체에서 표준조례안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이용연 대표는 “광주의 5개 구의회 운영위원장이 공동으로 조례개정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자고 합의를 했다. 적극적으로 막아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광주에만 국한된 이야기라고 전했다. 주민자치회는 단순히 정부·여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힘이 강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지역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도 연관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문제는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야당이 집권한 지역이라고 해도 중간지원조직을 해체하고, 주민자치회를 주민자치위원회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라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회의원들이 주민자치 권한의 강화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조직이 지역구에서 영향력이 강화되기를 원하지, 주민들 스스로 힘이 강화되고 활성화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주민자치회 문제는 그런 부분들까지 얽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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