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진료 거부 빈번한데, 늙어서 병원 편하게 갈 수 있을까”···성소수자가 생각하는 노후생활

김세훈 기자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63개 단체로 구성된 2023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투쟁단이 투쟁대회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63개 단체로 구성된 2023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투쟁단이 투쟁대회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늙어서도 여전히 차별받는 사회에서 살게 될까 봐 두려워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노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소수자인권센터)는 지난 15일 ‘제2차 성소수자 노후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고 18일 밝혔다. 2021년 1차 노후인식조사에 이은 두 번째 조사다. ‘2020년 사회보장 대국민조사 연구’ 등을 토대로 조사 항목이 구성됐다. 이번 조사에 응한 이는 816명으로 2021년(578명)보다 늘었다. 소수자인권센터는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노후생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라고 했다.

성소수자들의 주요한 노후 관심사는 ‘주거’였다. 설문 응답자의 82.3%(672명)가 노후 지원 준비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주거를 꼽았다. 일반인 대상의 대국민조사에서 ‘돌봄을 포함한 건강’이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꼽힌 것과 대비된다. 신혼부부·다자녀가구 등이 중심인 현행 주거지원정책에서 성소수자는 혜택을 받기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동성커플이나 성소수자의 경우 한국에서는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을 중심으로 지원되는 주거정책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며 “공공주택 공급에서 우선순위 문제뿐 아니라 전세보증금 대출 등 전반적 영역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가 부족한 점도 지적됐다. 트랜스젠더들은 ‘성소수자로 나이들어 가는 것에 대한 가장 큰 두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병원에서 편하게 치료받을 수 없을 것 같다’(42.9%, 21명)는 점을 주로 꼽았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트랜스젠더 5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해 의료기관 방문이 필요했지만 포기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27.8%에 달했다.

류세아 트랜스해방전선 부대표는 “아직도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고, 시선이 두려워 진료를 받지 않겠다는 성소수자들도 많다”고 했다. 이어 “트랜스젠더들은 호르몬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생애주기별 호르몬 투여에 관해 정해진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노후에 병원에 갈 일은 많아지는데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없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소수자인권센터는 “향후 요양시설·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생활하는 성소수자 노인들이 늘어날 것을 고려해 복지 종사자들에게도 성소수자 돌봄 관련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60~70년대부터 성소수자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된 서구사회에 비해 우리나라는 문제를 다뤄온 기간이 짧아 ‘노인이 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옅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다림 소수자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노인 성소수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연구가 활발한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관련 연구가 전무한 상황”이라며 “국가 차원의 조사들이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장 변호사는 “성소수자는 국가 정책의 기반이 되는 통계 조사에서 제대로 집계된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복지정책 등에서 성소수자가 배제되고 있다”며 “인구 총조사 등을 실시할 때 성소수자 집단을 분류에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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