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이미지
‘의사 과잉’을 주장하는 의사단체도 비수도권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없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어떻게 늘릴 것인가’라는 질문은 의대 정원 증원 논의에서 빠질 수 없다. 현재 심각한 의사 인력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늘어날 정원이 지역이나 필수의료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별 의료기관 근무 의사의 평균 연령
‘지역인재’ 혹은 ‘지역의사’ 선발···기존 의대 체계 유지하며 지역 유입 확대
정부는 소규모 지역 의대나 국립대 위주로 증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의대가 없는 의료취약지에 국립의대 신설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16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현재 40개 의과대학이 있는데 17개가 50명 미만이라 어느 정도 규모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 지역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어서 여론을 수렴해서 교육부와 잘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의료 불균형 완화책으로는 ‘지역인재전형 확대’를 언급했다. 조 장관은 “비수도권 의대는 지역고교 졸업생 40% 이상 선발이 의무인데 이 비율을 높여볼까 한다”며 “전공의의 지방 수련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겠다. 전공의가 비수도권으로 가는 비율이 40%인데 이를 50대 50으로 맞춰보겠다”고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비즈허브 서울센터에서 열린 응급실 수용거부 방지대책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복지부 제공
정부의 방안은 기존 의대 체계를 유지하면서 수도권 쏠림을 막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의대 정원 확대와 더불어 의대 교육과정이나 전공의 수련체계에서도 의사를 지역이나 필수 진료과목으로 유도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비수도권 지역의 인재가 해당 지역 의대에 입학하고, 졸업 후 다시 그 지역 의료에 종사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지역의사제’는 이 선순환 구조를 강력히 ‘의무화’한 내용이다. 2020년 7월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29명이 발의한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을 보면, 기존 의대가 ‘지역의사 선발전형’을 따로 만들어 학생을 선발하고, 국가가 장학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지역 의료시설에 의무복무해야 하는 기간을 10년으로 정했다.

지역별 의료기관 인구 10만명당 근무 의사 수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지역의사제가 직업 선택의 자유와 이동권 등을 침해하고, 지역 의료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2020년 일본의 지역정원제도(한국의 지역의사제와 유사) 현황을 분석해 85% 전후의 일본 지역의사가 의무복무 지역인 해당 ‘현’(한국의 ‘도’)에서 근무하지만 해당 ‘현’의 의사부족 지역에서 근무하는 지역의사는 24.1%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공공의대 등 새 의사양성체계도 대안 ···관건은 수련기관 확보 등 ‘교육의 질’
시민단체들은 기존 의대를 확대하는 방식에 더해 ‘공공의대’와 ‘특수목적의대’ 등 아예 새로운 의사양성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단순한 의대 정원 증원이 아닌 필요한 곳에 의사를 배치할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국립 의대가 없는 지역에 공공의대를 신설해 지역에서 10년간 의무복무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의사 인력이 부족한 국방·보훈·소방·경찰·교정 등 분야에 종사할 의사를 길러내는 특수목적 의대를 신설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도 지난 16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공공의대 설립이 가장 기본이 돼야 한다”며 “현재 국립대 의대나 소수 정원 사립대에 10명씩, 이렇게 기존 의대에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졸업 후 의사면허 취득하면 다시 수도권에 쏠리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지역의사제의 경우 직업 선택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실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공공의대는 졸업 후 공무원처럼 지역 복무를 의무화할 수 있도록 법률에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 제정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준비 중인 ‘공공의과대학 및 공공의학전문대학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국가와 지자체가 공공의대와 공공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공공의대 졸업 후 의사가 되면 지정된 공공의료 기관에서 10년간 의무복무해야 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사 수 부족 현장 사례발표 및 지역 공공의대 설치법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의대는 복지부와 의협이 지난 1월부터 개최해온 의료현안협의체의 4대 안건 중 하나다. 의협은 공공의대 신설을 통한 인력확충 논의는 ‘절대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다. 의협은 지난 9일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 결과와 관련해 회원들에게 발송한 서신문에서 “각종 부작용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공공의대 등 의대신설을 통한 인력확충 논의는 절대 불가하다는 점이 필수적으로 고려되고 전제돼야 함을 복지부에 강조했다”고 밝혔다.
의협은 과거 부실운영으로 폐교된 서남대 의대 사례 등을 들어 공공의대를 반대한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공청회에서 “지역균형발전 명분으로 관동의대와 서남의대가 만들어졌지만 교수진과 수련환경이 확보되지 않아 부실교육으로 비판받은 역사가 있다”며 “(의대 설립 시) 천문학적 비용 투자 대비 효과성은 검증할 수 없어 국가 재정의 낭비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의협은 공공의대가 의료 질 저하를 불러올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공공의대로는 부족 규모 채울 수 없어···공공이든 민간이든 동시에 늘려야”
- 사회 많이 본 기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인원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공공의대 대신 ‘대규모 증원’이 가능한 양성기관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보건경제학 전공)는 “총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늘릴 수 있는 방편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며 “공공의대를 몇군데 신설하거나 기존 의대에 정원을 소규모로 늘려서는 의사인력 부족 규모를 채울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선 국립대 의대가 없는 지역에는 의대를 만들어 지역의료원과 묶어주고, 소수 정원인 사립대 의대 정원을 늘려주면 큰 (인력·시설) 투자 없이 (교육·수련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국군병원, 보훈병원, 경찰병원, 소방병원 등 특수목적 설립 병원이나 법무부 치료감호소에서도 의사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고 하는데 특수목적 의과대학이든, 의학전문대학원이든, 사관학교든 어떤 형태로든 정원 100~150명 규모의 양성기관이 생기면 수요를 충족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