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에서 퀴어 영화 빼라고 한 인천시···“전체주의적 혐오 행정” 반발

오경민 기자
다음달 제19회 인천여성영화제를 개최하는 사단법인 인천여성회는 16일 ‘2023년 인천여성영화제 사업 추진에 관한 여성회 입장’을 냈다. 인천여성영화제 제공.

다음달 제19회 인천여성영화제를 개최하는 사단법인 인천여성회는 16일 ‘2023년 인천여성영화제 사업 추진에 관한 여성회 입장’을 냈다. 인천여성영화제 제공.

다음달 개막을 앞둔 제19회 인천여성영화제가 인천시 측에서 퀴어를 주제로 한 작품을 상영작에서 배제하라는 요구를 했다며 규탄하고 나섰다.

영화제를 주최하는 사단법인 인천여성회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인천시가 공모 선정 사업인 영화제의 상영작을 검열하려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전체주의 행정이며 명백한 혐오 행정”이라며 “영화제는 인천시의 요구대로 상영작 리스트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며 애초 계획한 상영작 그대로 영화제를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회는 지난 5월 영화제가 시 공모사업에 선정된 이후, 인천시 측에서 퀴어 영화의 상영을 배제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고 주장했다. 여성회에 따르면 인천시 여성정책과는 공문 등을 통해 ‘퀴어 등 의견이 분분한 소재’는 상영작에서 제외를 요청했다. 지난 6월14일에는 여성정책과장이 영화제 측과의 통화에서 “퀴어 영화는 인천 시민 모두가 동의하지 않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아이들이 동성애를 트렌드처럼 받아들이고 잘못된 성 인식이 생길 수 있기에 교육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라고 말했다. 이어 면담에서도 인천시 측은 “동성애 영화 1편, 탈동성애 영화 1편을 같이 상영하면 나중에라도 반대세력에게 할 말이 있지 않겠나” “민원 소지가 많은 사안이다. 민원을 최소화하길 바란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인천시 여성정책과는 “이번 영화제의 퀴어 주제 상영작에 대해서는 시민사회 의견이 크게 상반되는 만큼 많은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수정 보완을 요청했다”며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동성애와 탈동성애 장르별로 각 1편씩을 상영하는 방안을 영화제 측에 제시했다”고 전했다.

백보옥 여성정책과장은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육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는 발언은 한 적이 없다. 아직 성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님들이 일부 우려하는 여론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과거 동성애자였으나 동성애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탈동성애자’들, ‘또 다른 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퀴어가 민감한 주제인 만큼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탈동성애 장르도 시민들이 보게해서 양쪽의 입장을 이해하고 시민들 스스로 생각하고 논의해 볼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탈동성애가 ‘전환치료’를 의미하는 것인지 묻자 “그런 것은 아니다. 탈동성애에 관한 다큐들이 있다”며 “양쪽을 다 올려 중립적으로 가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전환치료란 동성애·양성애자를 이성애자로 살도록 하거나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이 아닌 출생 시 지정 성별로 살아가도록 강제하는 과정을 말한다. 퀴어 정체성을 치료 혹은 교정의 대상으로 본다. 성소수자 당사자의 자기혐오와 자살률을 높이는 등 부작용이 심하며 국제적으로 비과학적·비윤리적 인권침해 행위로 비판받는다.

여성회는 인천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시의 지원을 거부하고 자체 예산으로 영화제를 치르기로 한 상태다. 영화제는 애초 계획보다 하루 단축돼 오는 7월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영화제 측이 공모한 텀블벅 펀딩은 18일 오후 3시 기준 744만2000원을 모아 목표액의 148%를 돌파했다.

여성회 측은 “인천시의 전체주의·혐오 행정을 절대 묵과하지 않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울 것”이라며 “혐오 세력과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가 우리를 갈라치려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단단하게 서로를 연결할 것”이라고 했다. 여성회는 오는 22일 인천시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영화제는 앞서 지난 5일 6편의 장편, 23편의 단편 영화의 상영 계획을 발표했다. 폐막작인 반박지은 감독의 <두 사람>은 36년 전 재독여신도회수련회에서 만나 베를린에서 함께 사는 수현과 인선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 상영은 인천 미추홀구 영화공간 주안 3, 4관에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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