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한 국가정보원 1급 간부들의 인사 번복 파문이 확산 일로다. 김규현 국정원장 측근 인사의 전횡에 그치지 않고 권력기관 간 세력 다툼과 알력설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인사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고 그 잡음이 외부에 노출된 것만도 지탄받을 일인데, 정치적 외압설까지 불거지니 충격적이다. 윤 대통령이 책임론이 제기된 김규현 국정원장과 독대하고, 대통령실이 진상조사에 착수한 것은 이번 파문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대통령실은 성역 없이 조사해 인사 참사의 전모를 밝히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국정원 1급 간부 10명의 보직 인사를 재가했다가 김 원장 측근 A씨가 내부 인사에 부적절하게 개입한 정황을 보고받고, 일주일 만에 1급 7명과 인사처장 인사를 철회하고 직무대기 발령을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 재가를 받은 국정원 고위 간부 인사의 번복은 초유의 일이다. A씨는 주미·주일공사, 해외분석국장 등 요직에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앉히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보수집 부문 출신인 A씨는 김 원장 취임 후 비서실장·기조국장을 맡아 지난해 국정원 1급 27명과 2·3급 100여명 교체, 김 원장과 갈등하던 조상준 전 기획조정실장 사퇴 파문에 관여한 의혹도 받고 있다. 국정원장의 측근이 일삼은 인사 전횡이 내부 통제 없이 수차례 반복된 것이다. 국정원은 투명한 감찰을 통해 무너진 인사 원칙을 바로 세우고,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한 점 의혹 없이 진상을 조사·공개해야 한다.
A씨의 인사 전횡에 권력기관 간 갈등설이 불거진 부분도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은 “A씨가 검찰 출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와 함께 인사를 좌지우지했고, 이 고위 관계자와 사이가 좋지 않은 대통령실 다른 고위 인사가 윤 대통령에게 (A씨 인사 전횡을) 보고했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 고위 인사들의 알력과 인사 개입이 이번 파문의 한 배경이 됐고, 단순한 투서나 국정원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사실이라면, 나라 안팎의 정보 현안이 산적한 국정원이 현 정부 출범 후 1년 내내 인사 갈등과 권력 다툼에 파묻혀 있는 정황이다. 국민 보기에 낯부끄럽지 않은가.
김 원장 취임 후 국정원은 ‘정상화’라는 미명하에 원장 직속기구인 방첩센터를 만들고, 대공수사권을 존치하고, 민간인 사찰 의혹을 낳은 고위 공직자의 신원조사 규정을 개정했다. 국내정치 개입 근절을 선언하며 ‘정권의 정보기관’ 오명을 벗어나려 한 국정원 개혁을 되물림하는 조치라 유감스럽다. 정권 교체 때마다 정치적 외압에 휘둘리는 인사 제도를 방치하면 국정원의 환골탈태는 요원할 뿐이다. 대통령 인사 재가가 번복될 때까지, 대통령실과 법무부의 1급 인사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철저히 규명하고 문책해야 한다. 국정원은 인사 파문을 바로잡아야 신뢰를 되찾고, 새로운 안보 위협 속에서 국가 정보기관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