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시대, 학생 인권과 교권

우석훈 경제학자

1970년대 초반에 100만명이 넘었던 출생아 수가 2022년 25만명 수준으로 내려왔다. 합계출산율이 끝을 모르고 내려가는 중이라 지금 추세로 진행되면 20년 후에는 10만명대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의 양상도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된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될 때, 한국은 자본이 희소한 시대였다. 기계나 물자 대신 사람을 대량 투입하는 노동집약형 산업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한국 경제를 만들었다. 사람은 흔했고, 사회는 사람을 막 대했다.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 오전, 오후로 나눠 2부제 수업을 했다. 사람의 가치가 기계의 가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았고, 자본은 높은 이자율만큼 충분히 대접을 받았다. 전세도 이 시기에 제도로서 자리 잡았다. 목돈만 준다면 월세도 필요 없이 집주인은 기꺼이 집을 내주었다. ‘자본 퍼스트’, 자본희소 시대였다. 인권은 없고, 권세는 자본에게!

21세기가 되면서 출생아 수가 60만명대로 내려왔다. 사람이 귀해지기 시작했지만, 노인들의 대거 노동시장 진출로 자본 우세가 지속되었다. “일하게 해달라”는 청년이 넘쳐났고, 한국 경제는 청년 노동자를 기계에 갈아 넣었다.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기계가 소중하다”였고, 사람의 희귀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빵 만들다가 기계에 끼여 사망한 어느 여성 노동자의 죽음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힘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더 안전한 기계를 쓰느니, 얼마든지 저렴한 노동을 갈아 넣는 게 낫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동 현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자본보다 여전히 낮게 보고 있다.

‘노동희소’ 시대 아직 적응 못해

한 사회가 생각하는 사람의 가치는 연봉으로도 표현되지만, 인권이라는 이름으로도 표현된다. 자본에 비해 인간의 가치가 더 높아질수록 그 사회가 생각하는 인권의 가치도 높아진다. 물론 인간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가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울시에서 없애려고 하는 학생인권조례는 자본희소 시대를 살았던 보수 정치인들이 ‘노동희소’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학생 보기가 어렵고, 젊은 노동자 보기가 힘들다. 겨우 25만명 태어난 지금의 영·유아들이 10대가 될 때,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살아남을 중·고등학교는 얼마 안 된다. 학교가 문 닫지 않으려면 학생 인권을 강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것은 ‘자본희소’ 시대를 살았던 서울시의원과 일부 정치인들의 정서적 관성 때문이다. 사람은 아직 얼마든지 있고, 조금만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존재들은 얼마든지 배척하고 혐오해도 된다는 의식이 가득하다. 그러나 겨우 25만명 태어나는 시대, 사람은 경제적인 의미로도 그렇게 막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학생이 줄면 각종 보육기관은 물론 교육기관에도 위기가 온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탈락하지 않게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게 맞는데, 저출생 시대에도 아직 우리는 그런 인식의 변화가 없는 것 같다. 한 명 한 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사 대 학생 비율을 조정해 더 많은 선생님들을 투입하는 게 맞는데, 그렇게 할 생각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노동의 가치가 높아지면 교육의 가치도 같이 높아져야 하는데, 교육계 역시 아직 인식은 자본희소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권의 위기는 학생의 가치는 높아지는데, 거기에 상응하는 교육 그리고 교사의 가치가 조정되지 않아서 생기는 제도적 위기다. 균형을 잡기 위해 교사를 보호하고 소신껏 교육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보완이 당연히 필요하다. 교권을 위해 학생 인권을 낮추는 건 잘못된 방향이다.

서울시의회에서 결국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야당에서 서울시 조례보다 상위인 학생인권법 제정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원래도 그렇게 법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민주당 집권 시절, 너무 간편하게 지자체 조례에 의존했다. 학생의 인권은 강화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에 맞춰 교육자들의 가치도 같이 높이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이 불균형 속에서 학생 ‘인권’을 폐지하자는, 이 시대에 전혀 안 맞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게 우리가 보는 서울시의회의 혼동 아닌가 싶다.

학생인권도 교권도 강화해야

학생 인권도 강화하고, 교권도 강화하는 게 저출생 시대에 맞다. 혼동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는 노력이 맞지, 밑도 끝도 없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것은 한때 화려했던 자본희소 시대의 노스탤지어일 뿐이다. 사람 구하기가 너무 쉽고 사람을 막 대해도 되던 시절은 우리에게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만약 10대 전반에 투표권이 있었다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겠다고 하겠는가? 이 학생들이 곧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투표권도 갖게 된다. 정신 차리시기 바란다. 학생의 가치는 앞으로 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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