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년···미·중 갈등 속 한국전쟁 재조명, ‘한반도 평화체제’의 출발점

박명림 연세대 교수

① 시작하며 : 인간과 평화와 전쟁

정전 70년···미·중 갈등 속 한국전쟁 재조명, ‘한반도 평화체제’의 출발점
역사는 언제나 새로 쓰인다.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이다. 현대 한국의 가장 큰 비극인 한국전쟁은 우리 모두의 개인 삶과 체제, 남북관계와 국제질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대사건이었다.

오늘의 한국과 세계를 주조한 주춧돌이자 전환점이었다. 협력과 대결을 반복해온 미·중관계의 정초도 그 당시에 놓였다.

경향신문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과 한반도 평화에 대해 깊은 자료 발굴과 연구를 해온 박명림 교수(연세대)의 특별기고를 연재한다.

오늘의 미·중 대결과 한반도 문제 해법의 경로를 예리하게 살펴볼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눈을 통해 한반도의 영구 평화 실천과제를 담론하고, 이제 큰 시야를 다시 열어 한반도 문제를 넘는 새 과제와 지혜를 함께 찾고자 한다.


한반도는 정전 70주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무기와 군사력이 대치하는, 즉 최첨단 전쟁 능력을 통해 최악의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지극히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강원 화천군 비목공원 내에 한국전쟁 때 숨진 것으로 짐작되는 어느 무명용사의 돌무덤 위로 나무십자가와 녹슨 철모가 놓여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한반도는 정전 70주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무기와 군사력이 대치하는, 즉 최첨단 전쟁 능력을 통해 최악의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지극히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강원 화천군 비목공원 내에 한국전쟁 때 숨진 것으로 짐작되는 어느 무명용사의 돌무덤 위로 나무십자가와 녹슨 철모가 놓여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한국전쟁의 특이한 종결 방식이 초래한 이 근본적 모순구조에 눈을 뜨지 못한다면
70년 이후에도 우리는 적대와 안정, 대결과 대화를 반복해온 과거를 발본적으로 전환시킬 큰 철학과 방략의 창출에 실패하고 말 것이다

2023년 한국과 세계는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는다. 한국전쟁은 한국과 세계 모두에 굵고 깊게 파인 발자국을 남긴 대(大)상처이자 전환점이었다. 세계 최첨단 무기의 상호 강화를 통해 전쟁 준비와 전쟁 방지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오늘의 한반도 현실에 비추어 정전 70주년의 의미는 더욱 크다. 한반도는 정전 70주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군사력이 대치하는, 즉 최첨단 전쟁 능력을 통해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지극히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특이한 종결 방식이 초래한 이 근본적 모순구조에 눈 뜨지 못한다면 70년 이후에도 우리는 적대와 안정, 대결과 대화를 반복해온 과거를 발본적으로 전환시킬 큰 철학과 큰 방략의 창출에 실패하고 말 것이다. 벌써 70년이나 흘렀다. 70년이면 충분하다. 이 땅에 문명이 시작된 이래 최절정의 발전과 번영 시기에 우리가 동시대 최대 인간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을 다시 논의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

하여 가장 먼저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거시적 전개를 살펴보려 한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제국과 제국, 이념과 이념, 문명과 문명이 충돌하는 경계지대였다. 그중에서도 모든 힘과 요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들고 겨루는 절대경계지대였다. 마치 지질학적 단층지대와 같았다. 일단 제국과 이념과 문명의 격돌이 시작될 경우 한반도에는 마치 오랫동안 엇물린 지층이 한꺼번에 솟구쳐 오르듯 세계적 규모의 대전쟁이 도래하곤 했다. 그러나 그 대전쟁들 사이에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장구한 평화를 누렸다. 왜 이리 독특한 전쟁과 평화의 동학을 갖게 되었는지를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질서 전체에 대한 조감이 가능할 때 비로소 한국전쟁은 제자리를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세계다. 세계전쟁으로서 한국전쟁이 도래하게 되는 국제관계와 세계질서의 내면과 구조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부감한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절대경계적 지정학과 세계전쟁 시대 제국들 사이의 팽팽한 길항관계가 만나서 빚어낸 대폭발이었다. 요컨대 세계전쟁 시대에 한반도 지정학을 매개로 한 제국 대결의 폭발로서 한국전쟁을 말한다. 따라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세계대전, 볼셰비키 혁명, 2차 세계대전, 중국 혁명을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는 동안의 세계대결 구도의 긴장과 변동을 살펴보지 않으면 한국전쟁의 참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강대국들 사이의 급속한 관계 변동과 치열한 국익쟁투의 동학은, 냉전의 폭발이라는 기존의 단순한 해석이 한국전쟁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시각이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한국전쟁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재해석과 심층 논의도 빼놓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해 한국전쟁은 기존 주장과 달리 내전도 국제전도 아니었다. 국제전 또는 내전이라는 이 전쟁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오랜 논의와 해석은 모두 오류다. 우리는 이를 당시 자료와 언명들 그리고 사태 전개의 내면과 외양에 대한 재구성과 재해석을 통해 통합하고 지양하려 한다. 오늘의 한반도 문제의 구조적 기원인 한국전쟁에 대한, 흑백논리와 양자택일에 기반한 그동안의 해석은 한국전쟁의 결행이라는 현실적 오판과 실수 못지않은 학문적 오독과 오해였다. 근본 출발점에 대한 그러한 오독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중대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학문은 객관성을 띤 과학이 아닐 경우 현실 이해와 실천에서도 방해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어서 한국전쟁의 직접적 귀결과 영향을 살펴본다. 인류의 초대형 공동묘지와도 같았던 이 참혹한 세계전쟁은 무슨 현실적 자국을 남겼나? 이 전쟁이 70년 전에 끝난 전쟁이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인 근본 이유와 원인을 말한다. 무엇이 이토록 특이한, 종전 아닌 종전을 낳았는가? 오늘의 한반도 문제를 정초한 정전협정, 휴전선, 그리고 정전체제의 속살과 외연을 규명해야 하는 이유다. 냉전의 폭발로서 한국전쟁, 냉전체제의 하위요소로서 정전체제·분단체제였다면 냉전이 끝난 지 30년이 넘도록 지속되는 한반도 냉전대결과 분단은 설명할 수조차 없게 된다. 세계정전타협이자 세계분단합의였던 정전협정이 내적 불안정성과 외적 안정성을 낳게 된 연유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베를린 장벽에서 휴전선까지가 세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을 가른 세계 분할선이었음에 비추어 세계 진영대결의 최전선이었던 한반도 정전합의와 정전체제는 다시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으로는 한국전쟁이 정초한 두 한국의 관계와 성격에 대해 논의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남북 대치와 분단공존은 70년이나 흘렀다. 전후 두 한국 관계의 본질과 성격, 전개와 궤적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관계가 남한 대 북한, 즉 남북관계가 아니라, 한국 대 조선, 즉 한·조관계였음을 밝히려 한다. 한·조관계로의 시각 전환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 문제 해결의 바른길이 통일이 아니라 평화요, 통일 추구가 아니라 평화공존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 또는 통일 추구라는 시각과 관념을 지속하는 한 한반도 문제는 계속 길을 잃고 헤맬 것이다.

전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의 독특한 생존 방식과 발전 동학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전쟁은 조선의 오늘을 주조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 체제의 본질은 한국전쟁과 정전 시점의 상황에서 거의 변모되지 않았다. 특히 한국전쟁에 대한 ‘북침’ 주장은 북한 체제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정당성이 허위에 기초했음을 보여준다. 이 왜곡과 허구는 고립과 군사주의, 세습과 독재를 반복하게 하는 근본 연유였다. 따라서 전쟁 시점의 세계관에 결박되게 된 요인의 규명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체제와 경제구조를 포함해 한국이 일찍이 일제 식민유산을 극복한 데 비해 조선이 아직도 일제 하 전시체제의 연장에 가까운 수령체제, 배외주의, 군사주의, 동원체제를 지속해온 이유는 한국전쟁(왜곡)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전후 한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의식구조에 대한 분석은 국가발전에 대한 흥미로운 한 사례를 보여줄 것이다. 한국은 어떤 바탕과 이유로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에서, 또 치열한 남북 대결 와중에,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나? 북한 위협의 엄존에도 불구하고 세 권위주의 지도자를 전부 권력에서 축출시킨 한국민들의 강력한 민주의식과 도전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전전(戰前) 한국과 전후(戰後) 한국은 대체 무엇이 달라졌길래 누천년 동안 조용하고 안정적이었던 이 공동체가, 강력한 국가와 강력한 시민사회의 격렬한 충돌을 통해 넓은 보폭으로 전진 또 전진할 수 있었는가? 국제·남북·남남 갈등이라는 3중 갈등구조에 놓인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동 과정은 한국전쟁 질서와 인식으로부터의 탈출과 긴박이라는 이중성을 잘 보여줄 것이다.

이 전쟁이 낳은 생명 망실과 희생에 대한 후대의 보훈과 포용, 화해와 연대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 그것은 문명사회의 인간적 품격과 윤리적 책임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엔 내부적인 보훈 및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 그리고 국군포로를 포함한 북한과의 인도주의적 전후처리, 해외 참전국가들의 희생에 대한 보은 문제들이 두루 포함된다. 과거의 비극과 적대를 극복하는 문제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따라서 화해와 용서, 정의와 관용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한국 사회의 노력은 과거와 오늘의 극단적 이념대결과 진영대결 구도를 고려할 때 특히 더 소중하다. 따라서 6·25 참전명예수당 지급, 제주4·3의 화해와 상생, 장기수 송환, 코로나 당시 참전국 대상 마스크 제공을 포함한, 국내·남북·국제 차원에서 화해와 연대를 위한 한국 사회의 노력은 잘 정리될 필요가 있다.

끝으로는 한국전쟁과 오늘의 세계를 다룬다. 한국전쟁은 세계와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질서를 주조한 이른바 질서형성전쟁이었다. 먼저, 한국전쟁은 2차 대전 시기의 추축국 대 연합국 대결 구도를 자유세계 대 공산세계로 완전히 바꿔놓은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기본 국제질서, 개별 전쟁의 양상, 경계지대 관리, 핵사용 (제한)원리를 포함해 냉전체제는 이 전쟁으로 인해 비로소 하나의 체계를 갖추고 세계에 나타났다. 냉전질서의 운용 ‘원리’와 ‘매뉴얼’은 이 전쟁을 계기로 완비되었던 것이다. 미·소관계, 미·중관계, 중·소관계, 유럽 분단, 독일 부활, 제3세계(개념과 용어) 문제는 한국전쟁으로 장기 양태의 초기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점에서 이 전쟁의 국제적 충격과 영향은 당대 현지 질서를 정초한 제1차 동아시아전쟁(1592~1598)과 유럽의 30년전쟁(1618~1648)에 버금갔다.

한국전쟁은 오늘의 동아시아를 만든 전쟁이었다. 세계의 다른 지역과 달리 이 지역에만 두 개의 ‘전후 체제’가 존재한다. ‘2차 대전 이후 체제’와 ‘한국전쟁 이후 체제’를 말한다. 물론 후자가 전자를 압도한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유럽에서 냉전 해체가 가능했던 이유는 소련이 곧 냉전 형성의 당사자인 동시에 하나의 전후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해체되지 않은 근본 이유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지역대결의 맹주가 미·소가 아닌 미·중으로 바뀌었기 때문인 동시에 한국전쟁 이후 체제가 2차 대전 이후 체제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중관계, 한·일관계,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일본의 부활, 북·일관계, 양안(兩岸) 문제, 즉 중국과 대만의 통일 문제 역시 한국전쟁으로 인해 틀 지워진 문제들이었다. 동아시아가 안정적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문제는 결국 한국전쟁 이후 체제의 극복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미 동맹 역시 이 전쟁의 가장 중요한 부면이자 영향이다. 정전과 동일하게 70주년을 맞을 만큼 이 측면은 엄청난 무게를 갖는다. 한반도 문제의 구조와 전개에서 유사 이래-특히 제1차 동아시아전쟁 이래- 최대 전환점의 하나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실제 내용과 역할에 대한 정밀한 판독이 필요한 연유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국은 역사상 최초로 대륙국가에서 해양국가로 국가의 정체성과 성격을 완전히 탈바꿈했다. 근대 이후 한국에 태평양은 공간을 넘어 문명이자 세계관이며, 미래 가치이자 가능성이었다. 근대를 향한 가능성이자 미래였다. 한·미 동맹은 미국이 대륙국가와 맺은 최초의 동맹이기도 했다. 이 동맹을 통해 개항 이후 동아시아에서 가장 불안하던 한반도 문제는 비로소 소란이 가라앉았다. 가장 먼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한국에 대한, 또는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의 역사를 갖는 가까운 모든 이웃나라들(중국·일본·러시아·북한)을 단번에 제어하는 다중 빗장을 질렀던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역시 실제 내용은 양자동맹을 넘어 절대경계국가의 복합 안전장치였다.

한반도 영구 평화를 향한 전망과 과제에 대해 우리는 안과 밖을 모두 살펴야 한다. 먼저 국제 차원에서는 정전체제를 왜 극복하지 못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의 전쟁 종식 방식에 비추어 70년이나 지속되는 정전상태는 크게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 문제 해결의 절호의 국제기회들이었던 데탕트, 냉전 해체, 북핵 합의의 계기를 전부 놓치게 된 데 대한 성찰을 통해 오늘의 평화과제를 추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밖의 문제와 관련해 미·중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가장 중요하다. 한국전쟁, 냉전(cold war), 관계개선, 협조체제, 대결과 반도체전쟁(chips war)으로 급변한 미·중관계의 궤적과 한반도 문제는 불가분 관계를 갖는다. 한국전쟁은 미·중이 대규모로 충돌한 유일한 전쟁이었다. 미·중관계를 정초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미·중 반도체전쟁 역시 한국 기업과 기술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이 중첩성에 대한 예리한 판독을 통해, 미·중 대결을 한반도화하지 않을, 그리하여 한반도를 미·중 대결과 충돌의 진앙이 아니라 평화와 연결의 지점으로 승화시킬 대지혜가 절실하다. 미국과 중국이 양대 제국을 형성한 오늘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영구 평화를 위한 다른 한 필수조건으로서 ‘안(內)’은 한국 사회를 말한다. 영구 평화를 향한 준비에서 안은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비전과 방책이 없다면 한반도 정전체제와 북핵체제는 넘어설 수 없다. ‘밖(外)’의 누구도 그것을 마련해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따라서 내부평화와 외부평화가 하나라는 얘기는 내부평화를 통해 외부평화를 만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국내평화와 국제평화, 사회평화와 인간평화의 연결을 위한 출발점이 반드시 나이고 우리이고 여기여야 하는 이유다.

전쟁과 평화의 지형과 전개에서 ‘국제 우위의 원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밖은 안이 없이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 인류의 오랜 평화궤적들을 볼 때 이 점은 예외가 없다. 우리가 안과 밖의 특별한 상응(相應)을 통해 보편적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전쟁과 전후를 보자. 세계가 한국을 구했지만, 한국도 세계를 구했다. 피해와 책임도 물론 동일했다.

이제 우리는 한국전쟁과 정전 70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인간들이 만든 부조리한 모순과 비극의 심연, 그리고 그 모순과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하나의 파노라마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필자 박명림 교수

정전 70년···미·중 갈등 속 한국전쟁 재조명, ‘한반도 평화체제’의 출발점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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