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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구도에만 기대는 지도자 군상

입력 2023.06.20 03:00

[신주백의 사연史淵] 갈등 구도에만 기대는 지도자 군상

한국 근현대사는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갈등 구도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이를 무기로 내부의 경쟁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내쳐 왔으며, 스스로 강대국 정치의 대변자가 되었다
오염수 방류 둘러싼 여야 공방도 딱 여기까지다. 결국 문제해결 지향적 설전이 아닌 정서적 양극화 촉진하는 말다툼에 머물 수밖에 없다

사람이 누군가를 비판하면 이를 들은 사람은 비판하는 사람이 적절하게 알고 있거나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다는 선입견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프레임 씌우기, 특히 이념의 포로가 되어 내용의 깊이를 불문하고 주저하지 않고 선동하며 허위로 선전하는 경우에 그렇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둘러싸고 지금 진행 중인 여야 간 논쟁이 그 단적인 보기이다.

신주백 역사학자·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신주백 역사학자·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굴욕 외교’ 공방이 보여준 것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올해 들어 급속히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부상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17일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를 접견할 때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을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현 정부가 ‘대일 굴욕 외교’를 펼친다고 단정했다.

야당의 비판에 대해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북한이 자통(자주통일민중전위)에 ‘후쿠시마 물고기 괴담을 유포하라’는 지령을 내린 뒤 민주당이 ‘방사능 밥상’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거짓선동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심전심인가, 아니면 ‘남조선 민주당’인가”라고 적었다. 굴욕이라고 단정적으로 비판한 데 대해 사실관계야 어찌 되었든 막가파식으로 색깔을 덧씌워 공격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버려야 할 행태다.

반대로 지난 6월8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났다. 이재명 대표는 오염수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고 있는 중국의 힘도 빌려 비판의 날을 더 세우겠다는 계산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여당은 중국대사가 대한민국을 무시하는 언행을 취한 외교 결례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대사의 언행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외교를 “중화사대주의·삼전도 굴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회동은 “반일 감정을 조장하고 정부를 뒤흔들려는 목적 외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깎아내렸다. 동시에 여당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문제제기가 비과학적 선동이니 배격해야 한다며 국민의 궁금증까지 원천 차단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권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섯 가지 오염수 처리방식에 대해 설명하며 해상에 방류해야 할 이유, 아니면 어느 방식도 아닌 이유를 제시하며 국민을 설득한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설득력 있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상대편을 ‘굴욕 외교’라는 프레임에 가두려고만 했다. 여기에 거리낌 없이 이데올로기를 덧씌워 이념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자기 진영을 강화하려 했다. 국민의 납득보다는 정서적 양극화만을 부추기는 행태인 것이다. 여야는 그 과정에서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일본과 중국의 이해를 스스로 대변했다.

■살생 동반한 만주에서의 갈등이 드러낸 것

한국 역사에서 지도적인 사람들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프레임 짜기, 이데올로기 덧씌우기, 곧 스스로 이념의 포로 되기, 그리고 강대국의 이해 대변하기라는 세 가지 행동양식을 보인 경우는 역사의 전환기마다 있었다. 명과 청의 교체기에도 그랬고, 개항기에도 어떤 열강과 함께해야 하는가를 두고 세력 간 경쟁했다. 그러한 모습은 일본 제국주의 지배 아래에서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이 협력하고 경쟁하는 도중에도 나타났다. 다만, 이때의 양상은 이전과 달랐다. 두 계열이 추구하는 가치 자체가 상호 부정적이었고, 그것을 행동으로 표출하는 과정이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 독립운동 계열 사이에서 경쟁과 협력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내내 있었다. 하지만 적대적 대결을 벌이며 서로 치열하게 싸웠던 때는 1920년대 말경부터 한 10년 정도였다. 특히 총을 휴대한 독립운동가가 많은 만주에서의 대결이 그러했다.

1929년 민족주의 계열 단체인 국민부는 사회주의 정파인 만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파(ML파)와 랴오닝성(遼寧省) 신빈현(新賓縣) 일대에서 세력 확장을 놓고 대결했다. 그 해 10월 국민부는 만주ML파 청년들이 이곳에 와서 세력을 확장하자 그중 7명을 잡아 참혹하게 죽였다. 이를 남만참변이라 부른 만주ML파는 국민부를 ‘제국주의의 전초대인 살인강도단’이라 규정하고 간부들을 암살하겠다고 선언했다. 1930년에는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국민부는 여기에 대응해 청년조직을 통폐합하고 조직을 정비했다. 또 만주ML파가 일본의 외교기관인 통화총영사관에 “독립군 박멸을 헌책하고 총기 40정을 수취”하며 주구가 되었다고 단정했다. 사회주의 계열을 공격하는 데 중국국민당과도 호응했다. 결국 만주ML파와 국민부는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서로 상대편이 일본의 앞잡이라며 제거할 적으로 간주했다. 일본을 상대로 마이너스 경쟁을 벌인 것이다. 두 단체는 이 과정에서 각각 중국국민당 및 중국공산당의 이해와 일치하는 활동도 벌였다.

■이념 및 지역 갈등의 민낯

1940년대 후반 해방 정국에서 두 계열 간의 관계는 이전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새롭고 복잡하게 재편되어 갔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데다,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한반도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의 결정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로 갈리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넘어 보려는 지도자들의 치열한 움직임과 전략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이념을 포함해 자신을 내려놓는 희생적인 지도자는 더더욱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친일파 청산 문제에다 세력 갈등, 여기에 이념 대립까지 중첩되는 가운데 좌우파로 쫙 갈리는 양상만이 선명해져 갔다. 좌우 대결은 자본주의의 미국과 사회주의의 소련에 기대어 전개되었다. 한국전쟁은 이러한 양상을 폭발적이고 극단적으로 표출했다.

이후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고착화된 남한 사회에서는 여러 사회적 갈등 유형 가운데 계급 갈등이 가장 우선하는 현안으로 부각되기 어려웠다. 계급 갈등은 이념 갈등에 종속됐지만, 이념 갈등을 매개로 표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진보적이거나 좌파 성향인 경우가 많지 않았다. 부자인 사람도 반드시 보수적이고 우파 성향의 사람이 많다고 볼 수 없었다. 한국 사회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무상급식·청년실업·노인 빈곤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도, 연령을 기준으로 세대별 복지정책을 수립하고 무상급식, 청년수당, 기초노령연금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계급 간 갈등을 완화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 갈등과 짝을 이루는 찰떡궁합은 동서 간 지역 갈등이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는 지역감정이 표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최초의 선거였다. 이때부터 여촌야도(與村野都) 대신 동서로 구분되는 투표 경향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투표의 동서현상으로 여당인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53.2%의 지지를 얻어 45.2%의 득표율을 기록한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를 이겼다.

투표 경향으로 표출된 동서 지역 갈등은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계기를 통해 나타났지, 대중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아니었다. 지역 갈등과 이념 갈등이 뒤섞이는 경향도 마찬가지였다. 반복되는 선거에서 두 갈등의 연계성이 밀접해질수록 대외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선거에서 노출된 갈등은 정치인의 동물적 생존에 어울리는 정도에 머물렀지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내용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여야의 정치공방도 딱 여기까지다. 그러다 보니 문제 해결 지향적인 설전이 아니라 정서적 양극화만을 촉진하는 말다툼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한국 근현대사는 남남갈등과 남북한 갈등이 치열해질수록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갈등을 풀어가기보다 갈등 구도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이를 무기로 내부의 경쟁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내쳐 왔으며, 스스로 강대국 정치의 대변자가 되었다. 지금도 그런 지도자 군상(群像)을 흔히 볼 수 있다.

■신주백

역사학자. 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한국근현대사를 동아시아사에 접목하여 연구하며 현재를 고민하고 있다.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출발하여 최근에는 <한국역사학의 전환> <일본군의 한반도 침략과 일본의 제국운영> 등을 간행했다. 저서 <역사화해와 동아시아형 미래만들기>, 이외에 공저로 <용산기지의 역사> <분단의 두 얼굴>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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