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입법 예고기간 ‘40일 이상’
“대통령실 입장 관철” 비판 나와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조태형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과거 어느 법령보다 빠르게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방통위는 지난 16일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입법의견 접수 기간을 10일로 정했다. 법이 정한 입법 예고 기간은 통상 40일이다. 10일은 관련 법 개정 이후 방통위가 정한 기간 중 가장 짧다.
경향신문은 2012년 3월15일 이후 국민 참여 입법센터 홈페이지에 공개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시행령 관련 입법 예고 83건을 모두 분석했다. 입법 예고 기간은 법령을 제·개정하기 전의 절차로, 시민에게 법령 내용을 충분히 알려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것이 목적이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법령 등을 제정·개정 또는 폐지할 때는 입법안을 마련한 행정청이 이를 예고해야 한다. 입법 예고기간은 예고할 때 정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0일 이상, 자치법규는 20일 이상으로 한다. 과거에는 입법 예고기간이 20일이었는데 2011년 12월 2일 행정절차법이 개정됐다. 다만 “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 또는 예측 곤란한 특별한 사정의 발생 등으로 입법이 긴급을 요하는 경우” 등에는 예고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개정된 행정절차법이 시행된 2012년 3월15일 이후 방송통신위원회가 낸 시행령 83건의 입법 예고 기간은 평균 37.2일이었다. 83건 중 70건(84.3%)은 규정을 지켜 40일 이상을 입법 예고 기간으로 했다. 40일 미만은 13건(15.7%)이었고 이 중 20일 미만은 7건(8.4%)에 불과했다.
20일 미만인 7건 중 5건은 ‘재입법예고’다. 한 번 입법예고를 통해 내용을 알렸으나, 조항에 대한 추가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이유로 다시 한번 의견을 듣는 절차다.
재입법예고를 제외하면 방통위가 지난 16일 입법 예고한 TV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기간이 10일로 ‘최단’이다. 이번 개정안 전에는 2016년 4월27일 공고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가 12일로 가장 짧았다.
이를 두고 정부가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행정절차법 개정 때 제안 이유에는 “정부의 입법 추진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를 법령에 반영함으로써 정부 입법 절차가 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양홍석 변호사는 20일 “법의 취지는 충분한 의견을 듣고 예외적으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번 건은 예외 사유에 해당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의견 수렴 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서 대통령실의 입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수신료와 관련한 장기간 논의가 있었고, 국민 참여 토론에서 폭넓게 의견을 수렴한 것이라 입법 예고기간을 단축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