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수능 ‘준킬러 문항’ 늘 듯…전문가들 “최악 경우 1등급 커트라인 ‘만점’ 될 수도”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킬러 문항’을 내지 않기로 하면서 ‘변별력 확보’가 올해 수능 출제진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킬러 문항은 정답률이 10% 안팎으로 매우 낮은 영역별 최고 난도 1~2문제를 가리킨다.
킬러 문항은 주로 국어영역의 독서파트 문제, 수학 객관식·주관식의 마지막 문제로 배치된다. 국어영역에서는 경제·과학 등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많고, 수학영역에서는 여러 개의 성취기준을 합쳐놓았거나 풀이 과정이 매우 길어 시간을 잡아먹는 문제가 많다. 이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는 ‘만점을 노리지 않는다면 수학 22번과 30번을 풀면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찍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조언이 공공연하게 떠돈다. 반면 최상위권 수험생들은 킬러 문항을 맞혀야 고득점을 올릴 수 있어서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김원석 인천 하늘고 교사는 지난 3월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연 ‘수능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수능 위주 전형이 ‘공정한 대입 전형’의 대명사가 되고, 수능 위주 전형으로 의학계열과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는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간 진보 교육계에서는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되는 킬러 문항이 고등학교 교육을 형해화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지난해 12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23학년도 수능 수학 문제 46개 중 8개가 고교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됐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교육과정 내에서만 문제를 냈다고 맞섰다.
올해 수능에는 중상위권 학생까지는 풀 수 있는 이른바 ‘준킬러 문항’이 늘어날 것으로 보여 난이도 조절이 최대 관건이 됐다. 교육 당국은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서 적정 난도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출제기법을 고도화하겠다”는 것 외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데 주력하다 변별력을 놓치면 최상위권 학생을 아예 가려내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국어 화법과 작문 1등급 합격선은 원점수 기준 96점 수준으로 예측되는데, 이보다 쉽게 출제되면 딱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이나 3등급으로 내려가는 수험생이 생길 수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상황에 따라서는 1등급 합격선이 만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평가원의 수능 난이도 평가가 수험생들의 체감과 잘 맞지 않았던 것도 변수다. 2021학년도부터 2023학년도 수능까지 평가원은 매년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는 피했다고 밝혔지만 수험생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불수능’에 가까웠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20일 성명에서 “킬러 문항은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상황에서 미세한 변별을 위해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며 “경쟁교육 체제라는 문제 원인을 내버려 두고 아무리 처방을 내려봐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