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감쪽같이 가짜 인생을 산 사람이 있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니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한다. 미국 작가·감독이자 크리에이터인 카일 보바흐의 얘기다. 시작은 지난해 10월, 소셜미디어에 올릴 새 프로필 사진을 궁리할 무렵이었다. 그는 ‘스테이블 디퓨전’을 쓰기로 했다. 키워드를 입력하면 안성맞춤 사진을 줄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유명 배우 라이언 고슬링을 닮았다는 소릴 듣던 보바흐는 그와 매우 비슷한 이미지를 금세 얻었다. 고슬링에다 매컬리 컬킨을 조합시킨 결과였다.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지난 몇년간 찍은 사진 중 최고”라는 설명을 붙여 공유하자 가족·친구들이 모두 진짜, 실제 사진으로 믿었다. 그때부터 일사천리였다.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 얼굴이 통한다면 가짜 삶도 생성 가능한 게 아닐까.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뉴욕 여행기 전체를 가짜 이미지로 꾸며냈다. 핼러윈 복장으로 파티에 간 것도 거짓이었다.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해 비싼 차를 사고 고급 아파트에서 여유롭게 지내는 일상생활도 공유했는데, 그는 뉴욕의 부모 집에서 지냈을 뿐이다. 나중에는 고슬링과 편하게 만나고 있는 장면까지 올렸다. 그래도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가짜 인생은 결국, 스스로 그만두고 나서야 중단됐다. 처음에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가지고 놀아볼 요랑으로 시작한 일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직감하고는 그간의 과정을 고백하는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결과적으로, 한 달 실험은 성공이었다. 인공지능 기술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믿을 만한’ 이미지를 생성해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짜 인생을 사는 일이 가능해졌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제 다시, 가짜를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흔히 가짜뉴스로 통칭되기도 하는 허위·조작 정보가 이미 홍수라 하는데 챗GPT가 촉발한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가 급속히 닥치면서 가짜 자체는 물론이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까지 넘쳐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계가 만드는 거짓 정보에 직면한 시기인 것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챗GPT를 겪어본바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위력을 실감하면서도 한계와 위험성을 지적했다. 문제를 주면 순식간에 기존 데이터를 매끄럽게 정리한 답을 내는 점은 일부 유용하지만 때때로 미확인 사실이나 거짓을 섞어 허무맹랑한 답변을 그럴싸하게 늘어놓는 허점을 보였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초고를 작성하다 분노해 맥북프로를 던진 사건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고 한 챗GPT의 답변이 그 오류를 상징하는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은 그 수준에 머물러 있을 리 없다. 오류는 날로 줄어들고 답변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그간 사실 확인 수단이던 인터넷 검색의 역할이 인공지능으로 넘어가고 있는 터라 검증이 한층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가 사실인지, 믿을 수 있는지를 판단할 사람의 몫이 커진 것이다. 보바흐는 인공지능과 함께한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까지, 당신의 얼굴에 대한 기계의 아이디어를 밤낮으로 응시하며 수천개의 이미지를 선별했다.” 이쯤되면 어느 쪽이 진정한 진짜일까 헷갈려진다.
밀려드는 가짜·거짓 정보를 원천봉쇄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규제와 단속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짜를 맞닥뜨려도 속아넘어가지 않는 길밖에 없다. 인공지능은 24시간 가짜를 쏟아낸다는데 사람의 지력으로 판별해낼 수 있을까.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가져야 한다.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 분석가를 지낸 신디 오티스는 날짜·출처와 제시된 증거부터 확인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속이려 하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와 이 말을 하는 이유를 따져보라고 조언했다.
인공지능은 가짜 정보를 수월하게 만들어내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계속 주장하기도 한다. 가짜 정보를 전파하고 편견을 증폭시키는 게 더 큰 문제다. 각자 입맛에 맞는 내용만 골라서 더 확실히 믿는 ‘확증 편향’에 기대는 것이다. 이를 안다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게 속편하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아무것도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가짜 정보 유포자들이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거짓 정보의 편향을 가리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