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1일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 나온 대통령 발언이 계속 화제다. 복지에 대한 대통령의 엉성한 인식을 확인했고,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비판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4년이나 더 국정을 이끌 대통령이기에 ‘수준 이하 발언’이라고 한탄만 할 수는 없다. 앞으로라도 제대로 사회보장전략을 추진하기를 바라며 다음의 두 가지를 제안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우선, ‘약자복지’ 담론을 재정립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 지원과 함께 복지체계를 촘촘하게 하겠다며 약자복지를 주창한다. 이 용어가 시혜적이라는 비판이 존재하지만, 어려운 계층의 복지에 주목하겠다는 취지는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가난함에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많고, 노인 빈곤율이 4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취약계층 복지는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복지를 약자복지만으로 한정하는 것은 매우 협소한 인식이다. 복지국가는 교육, 의료, 노후, 고용, 주거 등 모든 시민의 기본 필요를 사회가 책임지는 보편적 보장체제이다. 서구에서 복지는 자본주의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는 최저안전망이었으나, 20세기 중반 들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체 시민의 삶을 보장하는 보편주의로 발전하였고 이후 많은 나라들이 따라 배우는 국가 모델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2023년 오늘, 우리나라 대통령은 서구에서 초기 자본주의 시대 혹은 한국에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기에나 들을 만한 복지 인식을 부끄럼 없이 드러냈다. “현금복지는 선별복지로 약자복지로 해야지 보편복지로 하면 안 된다”고 단언하였는데, 이미 무상보육, 아동수당, 부모급여 등 조세 기반의 보편적 현금급여가 시행되고 있고,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역시 애초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잡아 있다. 현금복지 대상은 오로지 취약계층이어야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에 갇혀 있다보니 이미 운영되고 있는 보편적 급여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세계 경제규모 10위권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인류가 이룬 복지국가에 대한 기본 이해는 갖추어야 한다. 복지는 시민의 기본 권리이며, 이미 대한민국도 현금급여는 물론 아동보육, 노인요양, 장애인활동지원 등 핵심 사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운영하는 나라이다.
물론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환경에 있는 시민에게는 더 많은 복지가 제공되어야 한다. 어려운 계층을 대상으로 삼는 선별복지 혹은 약자복지가 필요한 이유다. 이처럼 약자복지는 보편적 복지프로그램과 상충하지 않고 보완하는 제도다. 대통령은 약자복지를 보편주의 토대 위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그래야 약자복지가 사회보장전략 안으로 포괄될 수 있다.
또 하나, 약자복지를 실제로 강화하라. 우리나라 복지 발전을 보면, 무상급식 논란에서 보듯이, 보편적 복지는 꾸준히 확대되었으나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는 지체되어왔다. 윤석열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를 비롯하여 ‘약자를 촘촘하게 보호’하겠다는 정책 방향이 전향적인 이유다.
그런데 지난 1년, 약자복지에서 의미있는 개선이 있었는가. 대통령이 대표 정책으로 내세우는 ‘기준중위소득 역대 최고 인상’은 근래 높은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 구매력도 확보하지 못하는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작년 전·월세 폭등으로 세입자들의 허리가 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올해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하였고, 노인일자리 사업 예산 역시 대폭 축소하려다가 국회 심의에서 겨우 복원되었다. 약자복지를 내세우는 정부라고는 결코 볼 수 없는 거꾸로 정책들이다.
제발 약자복지만큼은 제대로 챙기길 바란다. 오는 7월 내년 기준중위소득 수준이 결정된다. 지금까지 더딘 인상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대폭 올려야 한다. 올해 전세사기 사태, 하반기 역전세난을 감안하면 공공임대주택 확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근래 집값 하락은 공공매입의 기회이므로, 8월에 발표될 내년 예산안에 공공임대주택 몫을 대폭 늘려야 한다. 또한 현재 노인일자리는 참여 희망 노인의 절반도 수용하지 못한다. 내년에는 규모를 늘리고 3년째 고정된 급여액 27만원도 상향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이 당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역시 이제는 해결하자.
무리한 제안이 아니다. 중앙정부의 사회보장전략에서 복지담론 정립은 기본이다. 약자복지를 시대착오적인 시혜복지 인식에 가두지 말고, 복지국가의 보편주의 기반 위에 세워야 한다. 정말 취약계층 복지를 말하려면, 무엇보다 기준중위소득, 공공임대주택, 노인일자리, 빈곤노인에 집중해야 한다. 이 정도도 못할 거면, 더 이상 약자복지를 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