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아동 학대 대응과 관련해 임시 신생아 번호 관리아동 실태조사 방안 등을 발표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출생신고가 없는 영아가 살해·유기된 사실이 잇따라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친모에 의해 살해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돼 경찰이 친모를 긴급체포했다. 친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아이를 출산한 뒤 바로 살해하고, 시신은 집 냉장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 사례를 조사하면서 드러났다. 22일엔 울산의 한 아파트 단지 종량제봉투에서도 아기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복지부는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이 조사가 이뤄지면 범죄 사례가 더 나올 수도 있다.
감사원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 2236명을 파악하고, 이 중 1%인 23명에 대한 표본조사를 벌인 결과 최소 3명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1명은 유기 사례가 의심된다고 한다. 경기 수원에서 친모에게 아동 2명이 살해된 것 외에, 지난해 경남 창원에선 생후 76일쯤 된 아기가 영양결핍으로 사망했다. 화성에서 사라진 아기의 친모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생후 한 달이 되지 않은 자녀를 넘겼다고 한다. 출생 직후 보호자가 베이비박스에 유기한 사례도 있었다. 울산에서 발견된 영아 시신은 쓰레기를 수거하던 환경미화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복지부는 ‘임시신생아번호’만 있는 아동을 전수조사해 소재를 파악할 계획이다. 경찰과 지자체는 생명을 경시하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해 엄벌해야 한다.
이처럼 영아 살해·유기 사실을 수년이 지나도록 알 수 없었던 데는 허술한 출생신고제 탓이 크다. 현행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 한정한다. 부모가 신고를 안 하면 국가가 아이의 존재를 알 길이 없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은 사회안전망 보호를 받기도 어렵다. 사실상 제도권 밖의 ‘미등록 아동’인 셈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출생 사실이 지자체에 통보되는 ‘출생통보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 반대로 추진이 더딘 상황이다. 하지만 아동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출생통보제와 함께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지원하는 ‘보호출산제’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 두 제도는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까지 떨어졌다. 저출생을 걱정하면서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조차 돌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출생신고는 ‘존엄한 존재’의 출발점이다. 기록도 없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국회는 법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