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당이 투표 막자는 영주권자 80%가 ‘동포 가족’이라는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내 거주 중국인 투표권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에 있는 한국인에게 참정권이 없는 현실은 불공정하므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외관계를 확립해야 하고 특히 한·중관계부터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인 투표권 제한’의 잣대로 상호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한 나라의 선거제도는 민주주의 성숙도에 달린 문제다. 상호주의를 외국인 영주권자 투표권에만 적용하는 것은 국민·비국민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 국제인권규범 정신에도 반하는 퇴행이다.

공직선거법은 영주권 취득 후 3년이 지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김 대표는 ‘중국인 투표권’만 문제 삼았다. 국내 외국인 유권자 12만6668명 중 78.9%가 중국인이다. 이런 조치는 세금을 납부하는 지역 주민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허용하자던 선거법 개편 취지에 어긋나고, 특정 집단의 혐오·차별을 조장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

2021년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가 낸 ‘글로벌 시대의 외국인 지방선거권 문제’ 논문을 보면, 2018년 기준 영주권자 55.6%가 한국 국적을 보유한 동포·국민이고, 22.3%는 그 배우자 및 자녀라고 한다. 영주권자의 약 80%가 ‘동포 가족’이라는 것이다. 10만명에 달하는 중국인 영주권자도 해외 동포가 다수라는 뜻이다. 결국 여당에선 ‘동포 가족’의 참정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고, 저출생 문제 해법으로 ‘이민 확대 정책’을 내건 것과도 모순된다. 김 대표 발언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발언 갈등의 연장선에 있는 걸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중 간 상호주의에 맞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지시하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중국이 내정에 간섭할 수단을 갖고 있다”고 공격한 것도 다를 바 없다. 그 불똥이 영주권자 투표 제한으로 튄 것이다.

많은 선진국이 외국인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확대하고 있고 피선거권도 늘리는 추세이다. 저마다 민주주의 보편성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추진하는 외국인 투표권 폐지는 정쟁으로 치닫고 불필요한 외교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 2006년 아시아 최초로 도입한 외국인 투표권, 그것도 대다수가 동포라는데 정부가 뒤집을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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