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 21일 본회의에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재적의원 256명 전원 찬성으로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스토킹 행위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고, 스토킹 범죄에 대해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던 규정을 삭제하는 등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규정들이 포함돼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https://img.khan.co.kr/news/2023/06/23/l_2023062301000788600074051.jpg)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아쉽게도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사건이 있었다. 2021년 11월19일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피해자는 스토커 김병찬이 오는 것을 보고 스마트 워치로 첫 번째 구조요청을 보냈다. 경찰은 12분 만에 도착했지만 피해자는 사망했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피해자의 믿음을 국가는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쳤다. 지난해 9월14일 전주환은 피해자가 근무하던 신당역 화장실에서 피해자를 살해했다. 전주환은 불구속 상태에서 스토킹, 불법촬영 및 협박죄 등의 혐의로 징역 9년을 구형받고 법원의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판결 선고가 나기 하루 전 전주환은 피해자를 찾아갔다. 이유는 명백했다. 피해자에게 합의를 받아내려고 간 것이다. 스토킹 처벌법 반의사 불벌 규정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김병찬 살인사건에서 피해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선 가해자가 피해자를 해치러 가는 시간보다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하러 가는 시간이 빨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국가가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빨리 갈 수 있을까? 그건 가해자의 위치정보를 알 때 가능하다. 그래서 개정안에는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스토킹 범죄가 반의사 불벌죄로 돼 있는 이상 스토커는 피해자를 찾아갈 것이다. 피해자가 합의만 해주면 처벌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합의 때문에 피해자를 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주환 살인사건을 통해 알게 됐다.
이러한 뼈아픈 교훈을 통해 법무부에서 법률안을 만들었고, 국회가 화답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교제폭력이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그것이다. 교제 중 발생한 폭행으로 여성이 신고했고, 남성은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그로부터 약 1시간 후 신고를 한 여성이 살해됐다. 교제 중 발생한 폭력이라 스토킹 범죄를 적용할 수 없었다.
스토킹 범죄가 되기 위해선 지속적·반복적으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는 행위 등을 해 상대방에게 불안감·공포심을 일으켜야 한다. 연인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을 스토킹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제폭력에 대해선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제폭력은 일반 폭력과 다르다. 가해자는 피해자 집 주소, 가족, 학교, 직장 등을 낱낱이 알고 있다. 언제든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명백하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킹 처벌법에 포함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와 함께 피해자 보호 조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교제폭력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없다. 그렇다면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규칙’ 제29조에 있는 신변보호 규정을 최대한 활용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부족하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법도 불완전하다. 하지만 인간에겐 의지가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공백이 있는 법이 있다면 끊임없는 개선과 보완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