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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아파트

입력 2023.06.23 20:20

수정 2023.06.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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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 차준철 기자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충정아파트. 차준철 기자

번듯한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서울 도심 충정로3가 대로변에 시간이 한동안 멈춘 듯한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짙은 녹색 외벽에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로 알려진 충정아파트다. 서울시 건축물대장에 준공연도가 1937년으로 기록돼 있으니 참 오래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에 나오는 낡은 아파트 ‘그린홈’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 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있겠다.

지금은 쇠락했어도 준공 당시에는 소공동 반도호텔(현 롯데호텔 자리)과 더불어 서울의 랜드마크였다. 첫 이름은 ‘도요다아파트’였다. ‘풍전아파트’로도 불렸다. 아파트를 지은 일본인 도요타 다네마쓰(豊田種松)의 이름을 딴 것이다. 충정아파트는 1980년대 들어서야 붙여진 이름이다. 그사이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도요타는 1940년 호텔로 용도를 바꾸고 한때는 술집으로 썼다고 한다. 해방 직후에는 만주 등지에서 귀국한 동포들이 무단 점유해 살았다는 설도 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이 인수해 ‘트레머호텔’로 개명해 유엔군 숙소와 사무실로 활용했다.

전쟁통에도 굳세게 원형을 유지한 이 건물은 1962년 희대의 사기극에 휘말린다. 한국전쟁에서 아들 6형제가 전사했다고 주장한 김병조라는 사람이 ‘반공의 아버지’로 불리며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고 이 건물까지 무상 불하받아 ‘코리아호텔’ 간판을 내건 것이다. 그러나 5개월 만에 거짓으로 들통났다. ‘봉이 김선달도 무색할 사기꾼’으로 대서특필된 김씨는 구속됐고, 호텔은 문을 닫은 채 1967년까지 방치됐다. 이후 국세청·은행과 기업·개인 등으로 주인이 바뀌며 주거시설로 돌아갔고 1970년대 유림아파트로 불리다 충정아파트가 된 게 40여년 전이다.

지난해 6월 충정아파트 완전 철거를 결정한 서울시가 이 아파트를 기억할 수 있는 역사공간을 만들겠다고 최근 밝혔다. 시대를 앞서간 건물이라 외려 험난한 길을 걷고, 주인이 바뀔 때마다 수난을 겪었던 충정아파트의 역사가 곧 한국 근현대사다. 오래된 건축물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 건물은 철거된다 해도, 버팀목처럼 시대의 질곡을 견뎌낸 충정아파트의 역사는 반드시 제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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