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주년, 이제는 평화체제로 가야 한다

정전은 휴전으로 전쟁을 잠시 중단했다는 말이다. 여전히 한반도는 전시상태다. 지금까지 한국 군대에서 자살·사고·작전 중 사망한 군인은 6만명이 넘는다. 현재도 매년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이 나라는 젊은이들의 피와 눈물로 유지된다. 어디 그뿐인가. 이 사회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정치와 경제는 피아(彼我) 대결의 장이고, 입시와 취직은 고지전이며, 대화와 토론은 양보 없는 이념의 참호전이다. 권력 독점은 전투지휘관처럼 인적·물적 자원을 마음대로 처분한다. ‘빨리빨리’ 문화는 후방의 전투지원 상황과 같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이러한 현실을 전쟁국가로 부른 사회학자 김동춘은 책 <전쟁과 사회>에서 “휴전체제란 곧 일상적인 군사적·정치적 대결체제이자 국민동원체제”라고 했다. 그리고 1953년 이후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질서는 모두 휴전이 정치사회적으로 내재화된 것”으로 봤다. 군사정권의 병영국가가 가능했던 것은 전시 중이기 때문이다. 냉혹한 자본이 국가와 유착하여 뿌리 내린 것도 노동자들을 적자생존의 전쟁터 위에 세웠기에 가능했다. 수직문화를 구축한 계량화·서열화는 화력을 집중하는 전투대형이다. 숱한 자살자는 대부분 자본주의의 패잔병이다.

역사 속에선 더욱 고통스럽다. 제주4·3과 여순사건, 전국에 걸친 보도연맹원 학살, 6·25전쟁 중 쌍방 간 부역자 학살과 사적 보복, 동족의 전투원들과 비무장 백성들의 죽음 등 한반도는 국가폭력과 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공동묘지다. 전투 외에 비명횡사한 자들에 대한 통계조차 없다. 권력자들이 반공주의와 국가보안의 덫을 놓아 인신을 맘대로 처분한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눈물은 강을 이뤘다. 자기검열 수단인 빨갱이만큼 효과적인 언어는 없다. 양심과 언론의 자유가 구현된 민주공화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학자들은 분단의 원인을 내인론과 외인론으로 본다. 6·25전쟁 또한 소련의 팽창정책에 원인을 돌리는 전통주의와 미국의 패권주의에도 원인이 있다는 수정주의 또는 복합적인 절충주의로 분석한다. 조선의 쇠락과 일제식민강권통치가 이어지듯 분단과 전쟁 또한 우리 안의 분열과 적대감이 외부 세력과 연동된 것도 사실이다. 내전과 국제전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럼에도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와다 하루키가 말하듯 한반도는 일본을 대신하여 분할되었다. 2차 세계대전 처리는 승자들의 논리로 귀결되었으며, 이와는 무관한 한반도는 강자들에 의해 국가주권을 몰수당했다. 냉전의 시작은 한반도였다. 북한에는 소련군이 해방군으로 진주한 반면, 미군은 점령군으로 남쪽에 진주했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분할을 제안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패전국도 아닌 한반도가 왜 신탁통치의 대상이 되어야 했는가.

한국인을 자신의 국가 운영자로 인정하지 않은 미군정은 사실상의 식민통치였다. 미국은 남한을 공산세력을 막는 교두보로 삼았다. 미군정의 하지 중장은 조선인을 적군으로 간주하고, 조선총독부의 관료와 경찰체제를 그대로 존속시키며 일본군에게 기존 임무를 계속하라고 지령했다.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했고, 해방 공간의 모든 정치 활동을 불허했다. 미군정기에 친일부역자들은 부활의 출구를 팠다. 반공노선의 이승만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지배계층에 합류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패망한 일제의 망령과 다름없다. 그러나 외세의 간섭을 막지 못했다고 해서 자주국가의 정당성마저 박탈당한 것은 아니다. 하여 무의미한 전시상태를 멈추고, 해방 직후 감격의 백지상태로 하나가 되었던 남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서독이 취했던, 동독과의 교류를 추진한 독일정책과 소련·동유럽의 이해를 구한 동방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먼저 평화와 통일을 향한 최소한의 단계로 북한과 소통하기 위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 북한문화를 개방하며, 우편·통신·종교·문화·체육 교류에 나서고, 교육과정에 북한학을 필수로 해야 한다. 그리고 냉전 주도국인 미국·러시아에 책임을 물으며, 주변 국가들을 외교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특히 원죄에 해당하는 분단을 행한 미국에 정전상태를 평화체제로 바꿀 책임이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전시군사작전권을 쥔 것 자체가 한국의 국가주권 침해다. 정전체제를 우리 손으로 끝낼 때, 비로소 독립국가의 주체성과 민주국가의 존엄성 회복, 그리고 남북의 집단적 전쟁 트라우마 치료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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