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 재직 시 KBS 내 ‘좌편향 인사’를 파악하라고 국가정보원에 지시하고 보고받은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과거 국정원 개혁위 조사에서 이러한 정황이 드러났을 때 이 전 수석은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문건을 작성한 국정원 직원은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 파견 국정원 행정관을 통해 홍보수석실과 국정원의 협업은 상시적으로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이 전 수석이 2010년 MBC의 지방선거 관련 보도에 영향을 미치려던 정황이 국회에서 폭로된 데 이어 KBS 인사 부당개입 정황도 드러난 것이다. 이는 국가공무원으로서의 적격성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직권남용이다. 이런 그가 방통위원장에 임명된다면 똑같은 일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이 26일 확인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 불법사찰 사건’ 재판 기록에 따르면 이명박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2010년 5월28일 국정원에 ‘KBS 간부급 인사에 반영하기 위해 좌편향, 무능·무소신, 비리 연루 등을 기준으로 부적격 간부들을 파악해 달라’고 지시했다. 국정원은 6일 뒤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 문건을 홍보수석실에 보고했다. ‘좌편향 간부는 반드시 퇴출, 좌파세력의 재기 음모 분쇄’ 등과 함께 실명이 기재됐다. KBS는 며칠 뒤 KBS <취재파일 4321> <추적 60분> 담당자들을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문건 배포자에 ‘홍보수석’이 명시돼 있어 이 전 수석이 관여한 증거로 볼 수 있다. 국정원 국익정보국 산하 언론팀 소속 직원은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 파견 국정원 행정관을 통해 수석실에서 ‘쪽지’ 형태로 내려온 지시에 각종 보고서를 작성해 올린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다만 2017년 검찰은 어떤 이유에선지 국정원 인사들만 기소했고, 청와대 인사들은 수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전 수석과 관련해 드러난 사실은 공무원으로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TV조선 재승인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한 혐의를 받는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에 대한 면직의 적절성 여부는 사법부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 다만 윤 대통령이 그를 면직하며 ‘국가공무원법의 중대한 위반’을 이유로 내세운 점을 고려한다면 공영방송 인사와 보도에 부당 개입한 이 전 수석을 같은 자리에 임명하려는 것은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이 전 수석이 과거 방송 장악에 관여한 사례들만으로도 그의 방통위원장으로서 적합성을 문제 삼기에 근거가 충분하다. 윤 대통령이 인사 발표를 미루는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장고 끝에 악수를 두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