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빠진 반쪽 해법’ 4개월 만에…‘강제’ 매듭지으려는 정부

박은경 기자

강제동원 배상금 법원 공탁

‘공탁 유효’ 판단될 경우
변제로 인정돼 채무 소멸

일방적 정부에 피해자 반발
“채권자들 의사 무시한 것”
적법성 둘러싸고 공방 예고

정부가 3일 일본이 빠진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지 않는 강제동원(징용) 피해자·유족 배상금에 대한 법원 공탁을 개시하면서 사실상 배상 절차 마무리에 나섰다.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는 생존 피해자의 목소리와 일본 피고기업 참여가 빠진 ‘반쪽 해법’이라는 지적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강제동원 문제 ‘매듭짓기’를 강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탁 결정의 적법성을 둘러싼 법적 공방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3월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하면서 ‘물컵 반 잔’을 먼저 채우고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기다린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과를 받지 못해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일본 정부의 한국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 추가 등을 호응 조치 완결로 해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피해자 지원단체 측이 해법 거부 피해자들을 위한 자체적 ‘시민 모금’ 운동에 나선 상황 등을 고려해 ‘공탁’ 카드를 꺼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정부가 지난 3월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내놓으면서 일본이 할 일(성의 있는 조치)이 있는 것처럼 발표했지만 결국은 일본의 아무런 호응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가지고 있던 모든 카드를 내버렸다”고 지적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공탁은 관련 법령에 의거해서 적법하고 유효하게 이뤄졌다”면서 민법 제487조 ‘변제공탁의 요건, 효과’를 근거로 들었다. ‘채권자가 변제를 받지 않거나 받을 수 없을 때 변제자가 채권자를 위해 변제의 목적물을 공탁해 그 채무를 면할 수 있다’는 조항을 따랐다는 설명이다.

‘변제자’는 채무자(일본 기업) 또는 채무자와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정부는 채권자인 피해자가 변제받지 않고 있으므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변제자 지위에서 법원에 판결금을 공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씨와 고 정창희씨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와 김세은 변호사는 이날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판단이 위법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민법 469조 제1항에 채무 당사자가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의사표현을 하면 제3자의 변제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면서 “이춘식 어르신과 고 정창희 어르신의 유족은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재단에 전달했다. 오늘 재단의 변제 공탁은 채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단이 ‘변제자’의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향후 법적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거부 측은 현재 진행 중인 강제집행 사건에 정부가 공탁 관련 서면을 제출하면 이에 대한 의견을 내고, 이 사건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별도 소송으로 공탁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그러나 법원에서 공탁이 유효하다고 판단하면 채무는 변제된 것으로 인정돼 소멸한다. 대법원 결정만 남은 미쓰비시·일본제철 등 일본 피고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 절차도 중단될 수 있다.

임 변호사는 “여러 고통과 고난 속에서 피해자들이 2018년 대법원 승소 판결을 끌어냈지만, 일본 압박에 굴한 한국 정부의 국내적 조치로 (공탁 유효 판단 등이 나오게 되면) 피해자들은 계속 싸울 수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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