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선엽 친일 경력 삭제 시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고 백선엽 장군의 친일 전력에 대해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다. 제 (장관)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백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 삭제를 추진하려는 박 장관은 지난 6일 CBS 라디오에서 “위원회가 ‘친일’이라고 결정했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때 정부기관이 내린 ‘친일’ 판정을 장관이 직을 걸고 부인한 셈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백 장군 친일 판정은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다. 2009년 11월 위원회가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5명 명단에 백 장군이 포함됐다. 백 장군도 회고록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 근무 사실을 밝히며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본인이 친일 경력을 인정했는데도 ‘직을 걸고’ 친일 기록을 부정하려는 박 장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백 장군의 공적을 주장하는 이들이 빼놓지 않는 것이 ‘다부동 전투’이다. 물론 백 장군이 이 전투에 참전해 공적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참전 장성들 사이에서는 백 장군의 ‘셀프 영웅화’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백 장군이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 자격으로 본인의 공적을 미화했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가 2010년 백 장군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군 원로들과 광복회 반대로 백지화된 것은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백 장군의 친일 행위라는 흠결을 눈감게 만든 것이 한국전쟁 공적이었으나 이 역시 엄정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임시정부가 아닌 8·15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보훈부가 힘을 넣고 있는 ‘이승만·백선엽’ 재평가 작업도 이런 기조의 연장선이다. 보훈부는 ‘가짜 독립유공자를 가려내겠다’며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해서도 이념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역사전쟁’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인물인 백 장군을 부각시키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공과는 그대로 평가’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엄연한 사실을 없애고 윤색하는 것은 고인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보훈 행정의 수장이라면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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