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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험가의 말년

입력 2023.07.13 03:00

수정 2023.07.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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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의 우회도로] 어느 모험가의 말년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백승찬 문화부장

백승찬 문화부장

<레이더스>(1981)에 묘사된 인디아나 존스는 말이 고고학자지 사실상 도굴꾼이다.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지역의 성스럽고 유서 깊은 문화유적 안으로 거리낌 없이 들어가 보물을 들고나온다. 치부가 아니라 연구를 위함이고, 개인 소유가 아니라 박물관 기증이 목적이라 해도 존스의 행동이 무분별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신상, 성궤 등 지역 고유의 전통, 신앙과 밀착했을 때 의미 있는 유물들을 별다른 문화적 맥락 없는 서구의 박물관으로 가져오는 행위는 독단적이고 무도하다. 이 과정에서 지역민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레이더스>에서 지역민은 대사 한 줄 받지 못한 채, 백인 도굴꾼들이 시키는 대로 땅을 파고 물건을 나른다. 때로 호전적으로 독화살을 쏘는 이도 있지만, 이 역시 독자적으로 살아 있는 캐릭터라기보다는 백인 정복자의 죄의식이나 공포가 만들어낸 허상처럼 보인다.

42년의 세월이 흘러 존스가 다섯 번째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사진)로 돌아왔다. 어느덧 80대가 된 해리슨 포드가 역시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한다. 인디아나 존스는 해리슨 포드의 아우라에 전적으로 기댄 배역이다. 호방한 허풍, 삐딱한 유머, 냉소와 온정의 균형감각이란 측면에서 포드를 대체할 배우는 없다.

다만 포드와 존스는 모두 늙었다. 영화 속 시대 배경은 1969년이다. <레이더스>에서 존스는 인기 많은 교수였다. <운명의 다이얼>에선 다르다. 존스가 “시험에 나온다”고 강조해도 강의를 새겨듣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존스의 외아들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었고, 아내는 이혼을 요구한다. 학문에 대한 열정도, 친구와의 우정도, 가족에 대한 사랑도 모두 사라졌다. 이른 저녁부터 바에 들러 미적지근한 위스키를 마시며 취하는 것 말고 존스의 낙은 없다.

영화는 존스에게 마지막 모험을 허락한다. 다만 무도한 옛 방식은 아니다. 모험의 계기를 제공한 대녀 헬레나 쇼는 존스의 안티테제가 된다. 쇼는 제3세계에서 위험천만한 모험을 펼치며 민폐를 끼친다는 점에서 40년 전 존스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한다. 이제는 존스가 쇼를 말리러 다니는 처지다.

인디아나 존스는 어떤 말년을 맞아야 마땅할까. 영화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평생 갈망하던 역사 현장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존스는 아르키메데스가 만들었다는 일종의 타임머신인 안티키테라를 활용해 과거로 향한다. 존스가 도착한 시대는 로마군의 포위전이 벌어지던 기원전 212년 시라큐스였다. 그곳에서 존스는 존경하던 아르키메데스를 만나고, 그가 만든 전설적인 기계 장치를 목격한다.

평생 이순신을 연구한 사학자가 시간여행해 한산대첩을 목격한 심경일까. 1969년으로 돌아가도 존스를 환영할 사람은 없다. 할 일도 없다. 낡고 지저분한 거처에서 조금씩 늙고 병들어 죽는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존스가 기원전 시라큐스에 머물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제작진은 존스의 바람과 달리 그를 현대로 데려온다. 위대한 모험, 지적인 자극, 육체적 활력은 없지만, 다친 존스를 간호하기 위해 돌아온 아내가 있는 곳이다. 나치와 싸우고, 독사와 전갈과 구르는 바위를 피해 질주하던 존스는 이제 평화롭지만 지루하게 노년을 보낼 것이다.

모험은 집으로 돌아와 완성된다. 트로이에서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흐르는 격렬한 전투를 치른 뒤, 지중해에서 온갖 괴물과 마녀의 방해를 물리치고, 고향에 돌아와서도 곧바로 집으로 오지 못한 채 아내 주변의 구혼자들을 처단한 오디세우스는 결국 아내와 침실에 들어 그 오랜 모험 이야기들을 밤새 나눈다. 그러고는 “갑자기 사지를 풀어주는 달콤한 잠이 그를 엄습해” 이른 아침에야 눈을 뜬다. 2500년 전의 장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해 쓰였는지도 모른다.

40여년간 고생한 영화 캐릭터도 자신의 여정을 차분히 돌아볼 때가 됐다. 낡은 페도라는 깨끗이 빨아 말리고, 세상에 이름을 알리겠다는 생각은 이제 접어야 한다. 또 다른 모험은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다음 세대에게 맡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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