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과학적으로 검증 안된 후쿠시마 오염수
일본 외무성이 IAEA에 거액의 뇌물을 주고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는 의혹과 별개로
도쿄전력의 주장이 옳다는 전제하에 내린 ‘문제없다’는 결론…한국 정부가 그대로 따라 하는 게 더 놀랍다
가습기살균제와 황우석 사태가 준 교훈처럼…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 검증’이 꼭 필요한 건 상식
이 일은 결코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다…안전성이 입증되기 전까지 해양 방류는 멈춰야 한다
과학기술은 현대사회에 너무나 깊숙하고도 폭넓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불특정 다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한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으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있다. 가습기 물에 직접 첨가물을 넣어 가습기의 균을 없앤다는 이 제품의 성분은 한마디로 농약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2020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집계한 피해신고가 6817명, 사망자만 무려 1553명이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이용자는 1000만명, 피해경험자만 67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국사회의 관련 영역 중 어느 한 곳에서만이라도 제대로 제동을 걸었으면 이런 초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악덕행위와 부도덕함, 무책임함은 별도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겠지만 국가기관과 공무원들, 그리고 지식인들이 자기 역할을 다 해야 그런 기업이 나타나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1994년 당시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시판 전에 독성실험요구를 하지 않았다. 2009년에는 대한소아과학회에서 급성간질성 폐렴 현황을 조사해 발표했으나 질병관리본부에서 역학조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2011년 8월에야 급성 폐렴의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의심하게 된다.
검찰은 해당 업체가 고발된 지 3년8개월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환경부에서 관련 물질을 유독물로 지정한 것은 2012년이었다. 2011년만 해도 가습기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돼 안전성 검사 등이 엄격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 완화가 참사를 키운 셈이다.
해당 업체에서는 서울대 A교수와 호서대 B교수에게 연구용역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교수들이 돈을 받고 업체에 유리하도록 연구결과를 조작했다는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재판에 넘겨진 A교수는 1심에서 증거위조, 사기 등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는 사기죄만 인정되었다. 서울대연구진실성위원회는 2심 판결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연구데이터를 임의로 변경, 누락함으로써 연구 자료를 조작한 행위 등이 연구진실성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대법에서는 A교수의 핵심혐의를 무죄로 확정 판결했다. B교수는 대법에서 배임수재, 사기 혐의 등이 유죄로 확정되었다.
사실 업체가 교수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며 자사 제품의 안전성을 검사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신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업체와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의 검증을 더 요구할 것이다. 이것은 과학 이전에 상식의 문제이다.
이와 비슷한 관계가 일본의 도쿄전력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관계이다. IAEA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권장’하는 국제기구여서 도쿄전력과 이해관계를 같이한다. IAEA의 최종보고서가 나온 지금 특히 국내 언론에서 그 보고서를 왜 믿지 못하냐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많이 봤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제3의 검증결과를 지켜보자고 할 것이다. 오염수 방류가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그리 급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사이비가 아닌 이상 종교단체조차 덮어두고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유명 학술지나 기관의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습성이 있다. 내가 대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교수님들은 논문 심지어 교과서도 쉽게 믿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것이 과학자로서의 첫 미덕이라는 말과 함께.
2005년 황우석 사건 때 그 연구진과 지지자들은 왜 사이언스라는 유명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믿지 않느냐고 의혹 제기자들을 공격했다. 그런 태도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과학자들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실린 논문들이 정말 과학적으로 합당한지부터 따지는 사람들이다. 결국 문제의 논문은 조작된 것으로 판명됐고 사이언스는 논문게재를 철회했다.
IAEA의 최종보고서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또한 검증의 대상이지 무조건적인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일본 외무성이 IAEA에 100만유로 이상의 뇌물을 주고 일본 입맛에 맞게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이른바 ‘외무성 간부 A 메모’와 무관하게 적용되는 사실이다. 지금은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 등의 보도로, IAEA가 일본 정부의 돈을 받고 일본의 요구대로 미리 결론을 정해 뒀다는 의혹과, 그 의혹이 사실이라는 또 다른 제보까지 알려진 상태이다. 그렇다면 IAEA의 최종보고서에 일말의 의혹을 가지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돈 문제는 제쳐놓고 그냥 과학적인 입장에서 최종보고서를 살펴보더라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첫째, 보고서를 읽은 첫 느낌이다. 주어에 도쿄전력(TEPCO)이 너무 많이 나와 놀랐다. IAEA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무엇을 했다는 내용보다 TEPCO가 이런저런 주장을 하는데 그것이 국제기준에 부합한다는 논조가 많이 보였다. 문제는 TEPCO의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검증하는 내용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보고서의 전반적인 논조는 “도쿄전력의 주장이 옳다는 전제하에 문제가 없다”는 형식에 가깝다. 도쿄전력 입장에서야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포함해 모든 것이 문제가 없고 안전하다고 주장할 테니,
보고서의 논리적 구조는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 문제가 없다”는 동어반복에 가깝다. 놀랍게도 이런 논리는 한국 정부나 전문가 집단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오염수 처리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전문가가 할 일은 오염수 처리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검증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둘째, IAEA의 오염수 시료분석 결과는 2022년 K4-B 탱크에서 수집된 시료를 대상으로 실험실 간 교차비교를 한 1차 검증뿐이었다. 2차와 3차 검증을 위해 2022년 10월 G4S-B10과 G4S-C8 탱크에서 시료를 수집했으나 이를 분석한 보고서는 이후에(‘later in 2023’)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최종보고서 4.2장). IAEA가 정말로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검증을 하려 했다면 왜 2차, 3차 검증 결과가 나오기 전에 최종보고서를 발표했을까?
이어지는 ‘4.3장 환경 모니터링 확인 업데이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22년 11월 IAEA는 바닷물, 해양퇴적물, 어류, 해조류 등 환경 시료를 일본 전문가들과 함께 채취해 여러 실험실이 교차검증을 하게 했다. 이는 오염수 방출과 관련된 환경 모니터링의 일환이다. 그 결과는 올해 하반기에 나온다고 한다. 우선 검증의 객관성을 높이려면 일본 전문가들과는 독자적으로 시료를 채취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무엇보다, 올 하반기에 나올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왜 지금 보고서를 발표한 것일까? 환경 시료 모니터링은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인데 말이다. 혹시 IAEA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 일정에 맞춰 검증이 완전하게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최종보고서를 발표한 게 아닌지, 돈을 받았다는 의혹과는 별개로 그런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셋째,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는 그 어떤 ‘실험적 검증’도 찾아보기 어렵다. IAEA와 TEPCO는 각종 모형과 시뮬레이션 기법으로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결론짓지만 방사선환경영향평가를 다룬 3.4장에서 스스로 인정하듯 다수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실제로 바다에 방류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사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를 직접적인 실험으로 검증하기는 어렵다. 실험대상이 단 하나뿐인 바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족하나마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오랜 세월 추적조사를 할 수는 있다. 예컨대 지상에 커다란 호수나 수조를 만들어 축소된 해양생태계를 재현하고 지속적으로 오염수를 방류했을 때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전체 오염수 방류기간이 30년이라 하니 적어도 10년 정도, 또는 삼중수소의 반감기인 12년 정도 모니터링한다면 누구라도 믿을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는 앞으로 있을지 모를 또 다른 비슷한 사태에 대비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은 왜 이런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 걸까?
IAEA 보고서의 1.2장을 보면 “IAEA의 검토는 일본이 선택한 ALPS 오염수 처리방법(즉, 바다로의 통제된 배출)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다른 잠재적인 방법들의 유효성은 평가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IAEA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처리할 최상의 방법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오염수 탱크를 더 많이 만들든지 인공호수를 크게 만들든지 하면 당장 오염수를 방류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돈이 많이 드는 방식이라면, 중국 정부에서 지적했듯이 일본 내부의 산업용수나 농업용수로 쓰면 된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오염수를 마시거나 거기서 수영도 할 수 있다고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일본 전국의 수영장을 후쿠시마 오염수로 채우거나 수돗물에 섞여 방류하는 것도 비용을 줄이는 한 방법이다. 그것보다 ALPS의 성능과 일본의 기술력을 증명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오염수 해양방류는 피할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위험물질을 희석시켜 농도를 낮춘다 하더라도 그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을뿐더러, 다른 대안이 있는데 굳이 모든 인류가 ‘수영장 소변방류’ 같은 찝찝함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그 때문에 치러야 할 행정비용이나 사회갈등 비용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적어도 이번 IAEA 보고서 스스로가 밝힌 추가 분석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오염수 방류는 중단해야 한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