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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카스트

폭염이나 폭우와 같은 극한 기후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33도가 넘는 폭염 중 하루 4만보가 넘도록 카트 정리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사망했다. 지난 15일에는 충북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되어 16일 오후 10시 현재 9명이 사망했다. 밤새 실종자 가족이 사고 현장을 지키며 애를 태우고 있지만 구조는 더디다. 중대재해 노동자 사망사고도 뉴스의 디폴트값인 양 이어진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이런 상황에서 ‘밥값 차별을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와 원청 정규직 간의 밥값 차별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18년이었다. 당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보다 더 많은 구내식당 점심값을 지불하는 현실에 분개하면서도 “일상 속 사소한 차별은 말하기도 민망하다”고 했다. 콜센터 여성노동자들이 일상의 부당한 대우와 차별에 대해 말할 때도 그랬다. “산재로 죽는 노동자도 있는데… 화장실을 자주 못 가게 하는 건 말하기도 민망하다”며 겸연쩍어했던 그녀들이 털어놓는 차별은 공기처럼 퍼져 있어 어디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차별은 차별받는 사람, 차별을 말하는 입을 민망하게 만든다.

2018년 당시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밥값 차별이 알려지면서 발전회사는 정규직과 동일한 밥값을 하청노동자에게도 적용했다. 그러나 이는 1차 하청노동자에게만 해당되었을 뿐이다. 그사이 2차 하청과 1년 미만 공사에 투입되는 일용직 노동자의 밥값 차별은 점점 더 격차가 벌어졌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발전소는 ‘거리 두기’ 정책의 일환으로 식당 이용 시간을 집단별로 구별했다. 정규직은 오전 11시30분에 이용하도록 하고, 하청노동자는 정오부터 이용하도록 했다. 밥값 차별에 이어 시간 차별이 더해졌다. 정오 전에 식당에 도착하더라도 출입은 통제됐다. 어느 날은 하청노동자들이 발전사가 둘러놓은 통제라인 바깥에서 기다리는 동안 고기반찬이 동이 났다. 민간기업으로 외주화된 식당 여성노동자들이 하청노동자들의 불만과 폭언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 5월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했지만 3년4개월 만의 일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은 더욱 심화되었다. 코로나19 시기 진행된 인력 감축과 심화된 과로는 마치 그것이 일상인 것처럼 유지되고 있다.

차별은 사람들 사이의 위계를 만들고, 위계는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밥값 차별이 해결된 1차 하청노동자가 2차 하청과 일용직 노동자의 밥값 차별을 알게 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 2차 하청노동자는 같은 밥값을 적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발전사 지원이 어렵다는 하청업체 측의 답변만 반복되었다.

또다시 밥값 차별이 언론에 보도되었으니, 발전소 현장은 변할까?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기업인 발전사에 ‘같은 밥값을 적용하라’는 두루뭉수리한 시정조치를 내린다. 그럼 발전사는 2차 하청노동자를 정규직 밥값의 울타리 안으로 넣어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몇개월짜리 공사에 투입된 일용직 노동자들만이 울타리 바깥에 여전히 남게 된다. ‘일하는 사람 모두의 평등한 밥값’이 아니니 차별의 위계는 사라지지 않고 차별은 더욱 소소하고 민망한 것이 된다. 그렇게 차별의 질은 더 나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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