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가 달달해? 현실은 사장 갑질·협박에 수급까지 ‘산 넘어 산’

조해람 기자

사장 승인 없이 수급 어려운 구조

대다수 직장인 비자발적 해고에도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다는 지적

국민의힘과 정부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센터 실업급여 관련 상담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문재원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센터 실업급여 관련 상담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문재원 기자

“회사에서 차라리 벌금 내고 제 실업급여를 취소시키겠다고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해고된 A씨는 최근 회사 대표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해고를 두고 노동청에서 회사와 다투고 있는 A씨에게 대표가 ‘실업급여 취소’라는 협박 카드를 내민 것이다. A씨는 “제가 실업급여 받는 게 싫고 제가 (부댕해고) 신고를 취소해야만 실업급여 취소를 안 해준다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이 실업급여가 구직자들의 구직 의욕을 저해하는 ‘시럽급여(달콤한 급여라는 의미)’라 부르며 대대적 개편을 예고했지만, 정작 대다수 직장인들은 비자발적 해고에도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장의 승인 없이는 실업급여 수급이 사실상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를 빌미로 노동자를 옥죄는 ‘갑질’도 일어난다.

정부·여당은 실업급여가 너무 높아 구직자들의 구직 의욕을 떨어트린다며 ‘수술’을 예고했습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2일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고용센터 실업급여 담당자는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이 계약기간 만료가 된 김에 쉬겠다고 하면서 온다”며 “실업급여 받는 기간에 해외여행을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사거나 옷을 사거나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는 올해 상반기 신원이 확인된 실업급여 관련 제보 67건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6일 밝혔다.

한국 직장인들은 대부분 ‘비자발적 퇴사’로 회사를 그만둔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지난해 1월 이후 실직 경험은 13.7%로 나타났다. ‘자발적 퇴사’가 16.8%였고,‘비자발적 퇴사(계약기간 만료, 권고사직·정리해고·희망퇴직, 비자발적 해고)’는 83.2%였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센터에서 한 시민이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센터에서 한 시민이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실직자의 실업급여 수급을 막는 ‘꼼수’가 횡행한다. 가장 흔한 유형은 사장이 노동자에게 ‘자발적 퇴사’ 처리를 강요하거나 노동자 몰래 고용보험 상실 사유를 ‘자발적 퇴사’라고 허위신고하는 경우다. 자발적 퇴사로 처리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회사는 비자발적 퇴사가 발생하면 정부 지원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속임수를 쓴다. 한 직장인은 직장갑질119에 “권고사직이지만 회사에서 정부지원금을 못 받는다는 이유로 절대 권고사직 처리를 해 줄수 없다고 했다”며 “혼자 싸우다가 지쳐서 결국 사직서에 사직 이유를 ‘개인 사유’로 적어 냈다”고 했다.

‘괘씸죄’로 실직자의 실업급여 수급을 막기도 한다. 다른 직장인은 “육아휴직 중 계약만료로 인한 퇴사로 실업급여를 받았다”며 “육아휴직 중 발생한 연차수당을 지급할 것을 요청하자, 회사 측에서는 실업급여를 받게 해주었으니 연차수당 지급을 안 해주겠다며 만약 노동부에 임금체불을 걸면 (앞으로) 실업급여를 못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권고사직 처리를 거부하고 노동자가 ‘자발적 퇴사’로 사직서를 쓸 때까지 괴롭힘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더 취약하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센터 실업급여 관련 상담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문재원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가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센터 실업급여 관련 상담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직장갑질119는 “대통령이 입만 열면 떠드는 노동약자들은 회사에서 억울하게 쫓겨나고,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직확인서 작성 권한을 노사 양측에 균등하게 부여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한 경우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실업급여 지급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하고, 정부지원금 중단 사유에 ‘자진 퇴사 강요’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조영훈 노무법인 오늘 노무사는 “밝고 명랑한 얼굴, 해외여행, 명품선글라스 같은 얘기들은 성실하게 구직활동을 하며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들을 모욕하는 말”이라며 “실업급여를 ‘꽁돈’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발상이 나오는 것인데, 실업급여는 일정 기간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비자발적으로 이직하게 된 경우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만 지급된다”고 했다.

조 노무사는 이어 “정부가 신경을 쓰고 돌봐야 할 것은 ‘시럽급여’라는 유치한 말장난에 기댄 실업자 모욕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실업급여 갑질의 단속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했다.

“실업자들을 지금까지 그렇게 봐 왔구나”

실업급여 개편을 둘러싼 정부·여당 인사들의 ‘막말 논란’ 후폭풍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실업급여는 노동자들이 취업 중에 낸 보험료를 실직 후에 받는 것인데, 정부는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하며 저소득 청년·여성들이 복지에 중독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진정 실업급여가 달콤하다면 국민의힘 의원들부터 의원직을 내려놓고 달콤한지를 확인하길 바란다”고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7일 국회 앞에서 국민의힘과 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개최한 공청회에서 ‘실업 급여로 해외여행을 가고 명품 옷을 산다’ 등 청년과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7일 국회 앞에서 국민의힘과 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개최한 공청회에서 ‘실업 급여로 해외여행을 가고 명품 옷을 산다’ 등 청년과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김지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청년국장은 “그들은 여성구직자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갈 때의 심정을 ‘웃는 표정’과 ‘명품 선글라스’로 판단했다”며 “실업급여를 타봤거나 타고 있는 구직자들을 지금까지 그런 시각으로 봐 왔다는 게 충격”이라고 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청년과 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 조롱과 비하 발언에 대해 공개 사과하라”며 “국회가 해야 할 것은 실업급여 수급자의 대부분인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지, 불안정 저임금 노동자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뒤흔들어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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