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추진한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계획’
‘여성 대표성’ 빼고 ‘성별 대표성’으로 명칭 변경
또 ‘젠더 지우기’ 비판 예상…“현실 차별 은폐”
여성가족부가 2013년부터 진행돼 온 정부종합계획인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계획’의 명칭을 ‘공공부문 성별대표성 제고계획’으로 바꿨다. ‘여성’을 빼고 ‘성별’을 넣었다. 여가부는 “양성평등 관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정작 대표성을 끌어올려야 할 ‘여성’을 명칭에서 제외했다. 현실의 차별을 가리는 여가부의 ‘젠더 지우기’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랫]여가부 거부로 무용지물된 ‘개편 성평등지수’ 왜?
여가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3차 공공부문 성별 대표성 제고계획’을 마련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종합계획은 양성평등기본법에 기반해 5년 동안 공공부문 고위직 등의 성별 균형을 맞추는 계획이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국립대 교수, 군인, 경찰 등 총 12개 분야에서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달성 목표와 이행방안을 마련했다. 이번 계획에는 4대 과학기술원(한국과기원, 광주과기원, 대구경북과기원, 울산과기원)의 교원도 새로 포함됐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과 과장급, 지방자치단체 과장급 등의 성별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까지 장기적으로 상향을 추진한다. OECD 국가들의 중앙정부 고위공무원 여성 비율은 2020년 기준 37.1%다. 한국은 2021년 기준 10.0%에 그친다.
중앙부처·지자체 과장급 여성 비율은 2027년까지 30% 이상을 목표로 삼았다. 2021년 기준 중앙부처 본부 과장급 여성 비율은 24.4%, 지자체 과장 여성 비율은 24.3%다. 정부위원회도 특정 성별이 60%를 넘으면 개선을 권고할 예정이다.
군 간부 여성 비율도 2027년까지 15.3%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투부대에서 여군 보직도 확대한다. 경찰은 2026년부터 신임 경찰관을 통합해 선발한다.
국립대 교수와 4대 과학기술원 교원은 각 기관이 제출한 이행계획을 지속 점검한다. 4대 과학기술원 교원에게는 여성 교원 연구단절 예방 제도 등을 시행한다.
여가부가 정책 명칭에서 ‘여성대표성’을 뺀 것을 두고 ‘젠더 지우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12개 분야 전체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부족한데도 의도적으로 ‘여성’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기계적 평등’을 내세워 현실의 차별을 은폐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여가부는 “양성평등 관점을 반영해 명칭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플랫]‘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서 ‘여성’을 지워버린 여성가족부
이번 정부 들어 여가부의 ‘젠더 지우기’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여가부는 최근 정부 공식 통계인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도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 1월 발표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에서도 ‘여성폭력’이라는 단어가 대거 빠졌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한국의 젠더 갭(성별격차)이 제일 심한 영역이 공공·민간부문의 대표성”이라며 “특히 공공부문부터 계도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인데, 여성대표성이라는 정책목표를 삭제하면 기관들이 자신을 점검하고 노력해나갈 지표를 없애는 것이고 곧 미래의 정책 가능성도 삭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이어 “여가부가 여성 삭제에 앞장서며 현존하는 현실의 차별이나 폭력까지도 지우려 하고 있다”며 “(이런 식의 접근은) 여성 관련 정책뿐 아니라 여러 소수자 정책 등, 전반적인 사회적 차별해소 정책들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 조해람 기자 lennon@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