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신임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원인을 교권 하락에서 찾고, 이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발맞춰 정부·여당은 교권 강화 명목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시동을 걸고 있다. 교사 권리와 학생 인권을 제로섬으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자 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같이 지시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에서 교권 강화를 위해 국정과제로 채택해 추진한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이 최근 마무리된 만큼, 일선 현장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인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당, 지자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말한)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가 학생인권조례를 뜻하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다들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례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교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는 부분이 많이 지적이 돼 왔다”며 “이 조례를 만들었던 해당 지역이나 해당 교육청 등에서도 문제가 있으니까 조금 손질은 해야 되겠다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것이 교육 현장을 왜곡하고 특히 선생님들의 수업권, 생활지도권을 많이 침해하는 것은 사실 아니냐, 이런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밖에 없다”며 “그 부분에 대해서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보자, 이런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도 일제히 학생인권조례를 겨냥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교권보호 및 회복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권은 급격히 추락했으며 공교육이 붕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이날 윤 대통령의 지시 직후 브리핑을 열고 “법률, 시행령, 고시의 취지를 반영하여 (학생인권)조례가 개정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과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선 학교 현장 선생님들의 생활지도 범위와 방식 등 기준 등을 담은 고시안을 8월 내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 부총리는 지난 21일에는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교권 추락, 교권 붕괴로 인해 학교·교육 현장의 자정 능력이 다 무너져버렸다”며 “그 중 학생인권조례도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교사 사망 사건이 학생인권과 무관한 사안이며, 교권과 학생 인권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인권조례는 체벌, 학교 폭력, 복장·두발 제한 등으로부터 학생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교권 추락과 직접 연결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학생 인권을 문제삼는 인식은 자칫 ‘애들은 맞아야 한다’ ‘선생은 때릴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잘못된 해법 도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사망한 교사 추모 분향소를 조문한 자리에서 “이것이 학생과 선생님 간 인권 충돌, 학생인권조례에서 비롯됐다는 접근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접근방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인권과 교육권이 서로 상충하지 않는다”며 “학생과 선생님을 가르는 접근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이든 없는 지역이든 가리지 않고 교권침해나 아동학대 신고가 일어나고 있다”며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침해는 상관관계가 있지 않은데 이걸 해법으로 생각하는 한 정쟁이 일어나고 지혜로운 제도 개선에 합의하기 어려워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