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모 있는 연금지식’
⑥연금개혁, 해외는 어떻게
1988년 첫발을 뗀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두 차례 개혁을 거쳤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개시연령을 기존 60세에서 2033년까지 65세로 단계적 상향하는 것을 골자로 1차 제도개혁에 나섰다. 2003년 제1차 재정계산에서 국민연금 기금이 2047년에 고갈된다는 전망이 나오자 노무현 정부는 2007년 2차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보험료율은 그대로 두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장기적으로 40%까지 낮추기로 했다. 이후 재정계산에서 기금 고갈 시점은 2060년으로 ‘13년’ 늦춰졌다.
국민연금은 이번 정부에서 세 번째 개혁을 앞두고 있다. 저출생·고령화 심화와 제도 성숙으로 기금 고갈 시점은 더 앞당겨졌다. 한국의 공적연금이 마주한 현실은 과거 해외 주요국들이 이미 경험한 상황과 비슷하다. 한국보다 연금 제도가 더 일찍 성숙한 나라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공적연금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목표로 ‘축소지향적’ 연금개혁을 했다. 캐나다, 스웨덴, 일본 등의 사례를 통해 한국 연금개혁 방향과 관련한 시사점을 살펴본다.
캐나다: 정치적 대화와 ‘국민적 합의’
캐나다는 1997년 CPP(국민연금과 유사한 소득비례연금)의 재정건전화를 목표로 개혁에 나섰다. 1995년 CPP 재정계산에서 2015년 기금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해지자 캐나다 연방정부는 ‘국민적 합의’에 나섰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1996년 4월부터 두 달간 18개 도시에서 총 33개 세션을 열어 국민 대상 공공협의(public consulatation)를 진행했다.
당시 연금 제도에 대한 합의사항을 의회에 상정하려면 ‘3분의 2 이상의 인구가 포함된 3분의 2 이상 주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만 했다. 연방 정부는 공공협의 과정에서 당시 연금재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설명하고 최대한 할 수 있는 조치를 집약한 정보를 대중에 투명하게 공개했다. 개혁 논의과정에서 두 개 주가 CPP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자 연방정부는 이들의 실업보험료 인하 조건을 받아들여 최종 합의안 도출에 성공했다. 캐나다 전체 인구의 80%를 가진 8개 주가 동의했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캐나다는 보험료율을 기존 5.6%에서 9.9%로 올렸다. 연금 재정 구조도 비적립식에서 한국과 같은 부분 적립식으로 바꿨다.
합의 과정은 캐나다 국민이 CPP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계기가 됐다. 2016년 캐나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9.9%에서 2019년부터 4년간 11.9%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25%에서 33.3%로 인상하는 개혁을 다시 단행했다. 국민의 CPP 지지가 컸기에 이번에는 공공협의가 필요 없었다. 캐나다의 연금개혁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재정건전성과 노후소득보장 등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스웨덴: ‘다층구조’ 기능의 회복
스웨덴은 연금 개혁 논의 역시 인구 고령화로 공적연금의 재정 불안전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시작됐다. 논의기구는 1984년 연금위원회로 출발해 연금개혁위로 이어졌고 1994년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 개혁안에 따라 스웨덴은 1998년 공적연금체계를 최저보장연금(한국의 기초연금과 유사), 소득연금(국민연금과 유사한 소득비례연금), 프리미엄연금(한국의 퇴직연금과 유사한 사적연금) 구조로 변경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숫자’ 뿐만 아니라 구조 자체를 손봤다.
한국도 세금으로 지급하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일부 퇴직연금이 함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구조다. 다만 기초연금은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월 30만원 수준으로 일괄 지급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에 더해 더 많은 노후 소득을 보장해주는 퇴직연금 역시 한국에선 상당수 가입자가 중도인출하는 등 연금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
스웨덴은 소득재분배 기능은 최저보장연금이 담당하고, 노후소득보장 기능은 소득연금과 프리미엄연금이 담당하는 ‘기능 분리’에 성공했다. 또 공적연금 가입자들이 사적연금인 프리미엄연금에도 의무 가입하도록 해 소득연금을 보완하도록 했다. 정부는 재정 부담을 덜고, 가입자는 제도가 성숙하면서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적용한 급여를 받을 수 있다. 2020년 기준 스웨덴의 미래 세대 예상 소득대체율은 65%에 달한다.
일본: ‘미래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
일본은 2004년 민간기업 근로자, 공무원 등이 가입하는 후생연금(국민연금과 유사)의 보험료율을 기존 13.58%에서 18.3%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가입자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강한 리더십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미래 세대가 지게 될 부담과 받게 될 연금 급여까지 고려해 ‘구조개혁’을 했다. 연금개혁의 주된 목표를 재정건전성에 두면 자연스레 미래 세대가 낼 보험료는 많아지고 받을 연금은 줄어든다. 연금개혁을 두고 세대 간 갈등과 불신이 팽배한 이유다. 일본 정부는 ‘보험료 수준 고정방식’을 도입해 보험료율이 18.3% 이상으로는 인상되지 않도록 해 젊은 세대의 부담을 줄였다.
재정건전성 측면에선 ‘거시경제슬라이드’라는 연금액 자동조정 장치를 도입했다. 노동인구 감소와 고령화 위험에 재정이 자동으로 대응해 연금액을 서서히 삭감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소득대체율 50%’라는 연금 급여의 하한선을 설정했다.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다. 소득대체율 하한선은 미래 세대에게도 연금 제도가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만들어졌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다미·류재린·이병재·김원섭·김혜진·정재철), 해외 주요국의 연금개혁 심층 사례 연구, 2023
- KRI(정원석·전예지), 스웨덴 연금 구조개혁 성과와 시사점,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