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주 정전협정 7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중국, 러시아와의 연대를 과시했다. 중·러 대표단이 지난 27일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옆에 서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8형’을 지켜보는 장면은 의미심장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미사일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가 그간 북한의 핵실험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혀온 것을 고려하면 불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중·러 정상들은 각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북한과의 협력 관계를 잘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미국은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내달 18일 워싱턴 인근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열린다고 지난 28일 발표했다. 백악관은 이 자리에서 “3자 관계의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축하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을 넘어서 전 지구적 안보 과제에 대응하고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증진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일이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 염두에 둔 지정학적 협력을 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3자 회담을 계기로 한·미·일 군사훈련 정례화, 나아가 3국 정상회담 정례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사실상 한·미·일 3자 동맹으로 나아가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 상황은, 한국 정부조차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맞서는 북·중·러 연대 구도 보여주기”(통일부의 ‘정전협정 체결일(북 전승절) 70년 동향 평가’)라고 요약할 정도로 대립 구도가 선명하다. 정전 70주년에 즈음해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적 대결 구도가 한층 더 짙어지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한반도 분단의 지속은 전 세계적인 탈냉전 이후에도 동북아에서 냉전 구조가 잔존하도록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한반도 분단이 미·중 전략 경쟁을 만나 동북아 냉전 구도를 다시 강화하고 나아가 전 세계적인 냉전을 부활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남북한의 안보 딜레마는 이제 미·일과 중·러까지 참여한 가운데 벌어지는 거대한 지정학적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 세계적 냉전 이후 역사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강대국들은 어지간해서는 직접 맞붙어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때도 그랬고, 지금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전선은 대부분 강대국이 아닌 변방의 작은 나라들에서 형성됐다. 가장 큰 피해도 전장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입었다. 남북한이 70년 전 그랬고, 지금도 그 최전선이 되고 있다는 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반도 사람들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