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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 참사, 학교 비극 그리고 각자도생

올여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감정 키워드는 슬픔과 분노다.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이은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슬픔과 더불어 사회적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오송 참사의 경우 모든 당국이 짜기라도 한 듯 수많은 위험 신호를 무시했고, 그 결과 시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초등 교사의 죽음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키듯 학교 담장을 넘어 전국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반면 사회적 비극과 참사를 지켜보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마음가짐은 일반 시민들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오송 참사 발생 후 김영환 충북지사는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자리에서 “내가 현장에 갔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었다. 골든타임이 짧은 상황에서는 어떤 조치도 생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시감이 든다. 현 정권에서 유독 자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앞서 국정 최고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도 국내 폭우 피해가 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일정을 강행하면서 “내가 지금 한국에 가봐야 상황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핼러윈 데이는 축제가 아닌 하나의 현상”이라는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재난 발생을 대하는 현 정부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순식간에 벌어진 자연재해라서 정부 책임이 아니며, 문제의 원인과 배경은 모두 전 정권에서 비롯됐고, 그렇기에 사과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이런 탓인지 행정부는 물론 지자체장들의 설화도 여기저기서 터지지만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재난과 비극의 원인과 배경이 무엇이든 이를 정치적 기회로 삼는 것도 특징이다.

윤 대통령은 수해 복구를 논의하는 국무회의에서 “이권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을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이권 카르텔이 진보 시민단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수해 복구와 민간단체 보조금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의아하면서도 ‘신박할’ 따름이다. 다만 가뜩이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보조금 옥죄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비극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단체 조례에 대해 개정을 추진하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자 여당·장관·보수 교육감들도 연일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인천·광주·전북·충남·제주 등 7곳에서 시행 중이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종교·성별·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교권 침해 증가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면 해당 조례가 없고, 보수교육감이 줄곧 선출된 지역에서도 교권 침해 사건이 속출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원래 보수 일각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젠더와 관련된 조항들 때문이었다. ‘진보 교육감 주도로 만들어 놨다니 그냥 뭔가 마음에 안 든다’라고 하는 게 더 솔직하고 정확하다”라고 일침했듯이 정부는 연관성이 부족한 논리를 들어 평소 눈엣가시였던 학생인권조례를 이참에 없애기로 작정한 것 같다.

재난과 사회적 비극에 대해 반성과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보다 갈라치기와 정쟁화가 계속되면서 정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사그라들고 있다. 국정 2년차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중반에서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협치와 연대의 정치가 사라지고, 잇따른 재난 속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빠르게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각자도생의 끝에는 윤 대통령이 취임 당시 약속했던 화합과 통합이 아닌 분열과 사회적 갈등만이 남을 뿐이다.

<광기의 리더십>의 저자 나시르 가에미는 “좋은 리더십은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현 정부의 리더십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모든 나쁜 사건들의 발생을 우연이라고 여긴다면 사전에 대비하고 계획을 짜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존재 이유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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