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6일 오전 11시, 주말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로 가득해야 할 강남역 11번출구에 철갑을 두른 장갑차가 배치됐다. 경찰특공대원들은 MP5 기관단총과 권총, 테이저건, 수갑, 삼단봉으로 중무장한 채 강남역 일대를 순찰했다. 번화가와 기관총이라는 어색한 조합에 시민들은 신기한 듯 사진을 촬영하면서 “이게 한국이 맞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경찰은 이날 혹시 모를 흉기 난동에 대비해 전국 15개청에서 45개소에 경찰특공대원 128명을 배치했다. 배치 지역은 종로2가역, 혜화역, 강남역, 잠실역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다. 최근 흉기 난동이 일어난 신림동과 분당 서현역 모두 사람이 몰리는 곳이었고, 살인 예고글에 적힌 지역도 번화가가 중심인 점을 고려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장갑차도 서울 강남역 1대를 포함해 총 11대 배치했다.
사람이 몰리는 곳은 안전하다는 공식이 깨지자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사는 직장인 최규민씨(28)는 “코엑스를 통과해 출퇴근하는데, 건물 구조가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게끔 설계되어 있다”면서 “예전에 이런 곳을 지날 때 안정감을 느꼈다면 지금은 흉기 난동의 타겟이 될까 오히려 더 두렵다”고 했다. 또 “평범한 길을 걸어갈 때도 수시로 뒤를 보게 되고, 손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고 했다.
새벽 출근이 잦은 직장인 윤모씨(29)도 “이젠 새벽과 낮 구분이 없어져 무섭다”고 했다. 여성인 윤씨는 과거에는 새벽 출근길에 어두운 길을 지날 때 주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흉기 난동 사고를 접한 뒤로는 모든 거리가 두려워졌다고 했다. 윤씨는 “새벽 출근에는 혹시 몰라 이어폰을 안 꽂고 걸었지만, 낮에 퇴근할 때는 예능을 보며 머리를 식히는 게 낙이었다”면서 “이제는 퇴근할 때도 두리번거리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장 동료들에게도 잘 들어갔느냐 묻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을 보며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을 떠올렸다는 시민도 적지 않다.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범죄 상황에 맞닥뜨리면 신체 능력과 관계없이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점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씨는 “키와 덩치가 커서 시비에 걸려본 적이 없는데, 이런 흉기 난동은 체격과 상관없이 피해자가 될 수 있어 무섭다”면서 “덩치가 크고, 원한을 사지 않으며 착하게 살면 범죄를 피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원칙이 깨진 셈”이라고 했다. 트위터에서는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직후부터 ‘총기난사’라는 키워드가 실시간 트렌드에 수차례 올랐다.
이날 강남역 일대는 한산했다. 주말 점심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강남역 11번 출구 지하상가는 오후 12시가 지날 때까지 인적이 뜸했다. 8년째 이곳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이모씨(30)는 “상권 위축이 심하다”면서 “토요일인 어제도 사람들이 심하게 없었다. 거의 명절 수준”이라고 했다.
경찰의 장갑차 등 배치가 오히려 불안감을 키운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씨는 “조심하는 것도 좋지만, 경찰이 너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사람들이 더 안 온다”면서 “보여주기식으로 예방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잡힌 사람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간은선씨(29)는 “순찰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단 나은 것 같다”면서도 “잡은 사람 처벌을 강력하게 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장갑차 배치는 ‘가시적 위력 순찰’ 개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범죄 실행 의지를 사전에 제압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불안감에 호신용품을 구입하는 이들도 늘었다. 직장인 안모씨는 “세상이 무섭다”면서 “여자친구에게 줄 것 하나, 내가 쓸 것 하나 가스총 두 개를 살 것”이라고 했다. 이날 11번가에 따르면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3일까지 호신용품 거래액은 전년동기 대비 202% 증가했다. 인터파크도 같은 기간 호신용품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23% 증가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