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물질’에 들뜬 마음…잠시 내려두자,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이종필 교수

(45) 상온상압 초전도체 검증의 시간을 기다리며

1911년 네덜란드의 카메를링 오네스가 ‘전기저항 0’인 물체 첫 발견…지금까지는 극저온에서만 현상 유지
한국 연구진의 상온 초전도 물질 ‘LK-99’ 발견 소식에 떠들썩…전 세계서 증명 나섰지만 아직은 ‘부정적’ 평가가 대다수
유튜브 등에선 거짓 정보 유포도…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 기대와 반대되는 결과라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사진 크게보기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초전도체(superconductor)란 전기저항이 0인 물체를 말한다. 전기저항이 0이면 말 그대로 전류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흐른다. 그 결과 전력손실도 없다. 이런 물질로 전자석을 만들면 강력한 자기장을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초전도체를 이용한 소자로 양자컴퓨터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기특한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1911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카메를링 오네스다. 안타깝게도 초전도성은 극히 낮은 온도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오네스는 극저온에서 금속의 전기저항을 연구하던 도중 헬륨의 액화온도인 4.2K(K는 절대온도 단위로 절대 0K는 영하 273도가량이다.) 근처에서 수은의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처럼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온도를 임계온도라 한다.

초전도체는 임계온도 이하에서 전기저항 0이 된다. 그러나 초전도체는 또 하나의 놀라운 현상을 보여준다. 임계온도 이하에서 초전도체는 내부 자기장을 밖으로 밀어낸다. 이 현상을 발견자 이름을 따서 마이스너 효과(Meissner effect)라 부른다. 자석 위에서 초전도체가 공중 부양하는 모습은 마이스너 효과로 발생한 것이다. 마이스너 효과가 생기는 이유는 외부 자기장이 초전도체 표면에 생성한 전류가 외부 자기장을 상쇄하는 자기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보통의 도체 주변에서도 외부 자기장을 변화시키면 그 변화를 상쇄하는 자기장이 유도된다. 흔히 말하는 렌츠의 법칙이 바로 이것이다. 초전도체의 마이스너 효과는 렌츠의 법칙과는 사뭇 다르다. 초전도체는 외부 자기장이 일정하더라도 그 자체가 내부에서 자기장을 밀어낸다. 즉, 보통의 도체 상태에서 외부 자기장이 내부를 관통해 지나가더라도 임계온도 아래로 온도를 낮춰 초전도 상태로 만들면 갑자기 내부에서 자기장이 사라진다.

자석 위에서 공중 부양하는 물체는 초전도체가 아니라도 많이 있다. 자기장만 충분히 세다면 심지어 개구리도 부양시킬 수 있다. 미 하버드대학의 유머과학잡지에서 수여하는 이그노벨상 2000년 수상자들은 강력한 자기장으로 살아 있는 개구리를 부양시킨 안드레 가임과 마이클 베리였다. 가임은 10년 뒤인 2010년 그래핀에 대한 연구 공로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모두 수상한 사람은 가임이 유일하다.

마이스너 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형제 사이였던 프리츠·하인츠 런던이었다. 이들이 제시한 런던방정식(London equation, 1935)에 따르면 초전도체에서의 자기장은 표면에서 내부로 들어갈수록 세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그 결과 자기장은 초전도체 표면 근처에만 머물게 된다. 1950년에는 소련의 과학자 레프 란다우와 비탈리 긴즈부르크가 초전도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현상론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이것이 란다우-긴즈부르크 이론이다. 란다우는 “미적분을 몰랐던 때를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천재였으며 현대물리학 발전에 다방면으로 크게 공헌했고, 1962년 액체헬륨에 관한 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란다우-긴즈부르크 이론에 따르면 초전도 상태의 전자, 즉 초전도 전자의 밀도가 가지는 에너지, 초전도 전자의 운동에너지, 자기장이 갖는 에너지 등으로 초전도체 자유에너지를 구성할 수 있다. 자유에너지는 어떤 물리계가 열역학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이다. 물리계는 자유에너지가 최소치가 되는 상태에서 평형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로부터 란다우-긴즈부르크 방정식을 얻을 수 있으며, 방정식을 풀어 초전도체의 많은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초전도 현상을 미시적인 수준에서 양자역학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설명한 것은 1957년, 존 바딘과 리언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였다. 이들이 제시한 이론을 세 명의 이름을 따서 BCS이론이라 부른다. BCS이론의 핵심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전자들이 쌍을 이루어 전체가 하나의 응축된 상태로 움직이는 것이 초전도 현상이다. 이때 전자쌍을 쿠퍼쌍이라 부른다. 전자는 파울리의 배타원리가 적용되는 입자여서 둘 이상이 하나의 상태에 같이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데 전자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하나의 쌍을 이룰 수 있으면 이 쌍은 배타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쿠퍼쌍이 하나의 응축된 상태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전자가 음의 전기를 갖고 있어서 서로 밀어낸다는 점이다. 전자들의 전기적인 반발력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어떻게 이들 전자가 하나의 쌍을 구성할 수 있을까? 시료의 격자구조를 형성하는 원자핵이 열쇠이다. 음의 전기를 가진 전자가 양의 전기를 가진 격자구조의 원자핵 사이를 지나가면 주변 원자핵들이 순간적으로 전자 쪽으로 약간 쏠린다. 이렇게 약간 뒤틀린 격자구조는 다른 전자들을 더 쉽게 끌어들인다. 이 과정은 두 개 전자가 격자 진동을 매개로 서로 이끌려 하나의 쌍을 구성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자가 쿠퍼쌍을 형성하면 원래 전자들과는 다른 에너지 상태를 갖게 된다. 그 결과 전체 계의 에너지가 원래보다 약간 낮은 상태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것이 초전도 상태이다. 이 결과는 전자들 사이 상호작용의 종류와 상관없이 최종적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퍼텐셜이 존재하기만 하면 항상 성립한다. BCS이론은 초전도체의 많은 열역학적 특성과 마이스너 효과 등을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란다우-긴즈부르크 이론을 유도할 수 있다.

바딘과 쿠퍼, 슈리퍼는 197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바딘은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공로로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이후 두 번째 받는 것이었다. 노벨물리학상을 두 차례 이상 받은 사람은 바딘이 유일하다. 긴즈부르크는 2003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다만 BCS이론에 따르면 30K 이상 온도에서는 쿠퍼쌍이 잘 형성되지 않는다. BCS이론에서는 임계온도가 높은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1986년 세라믹 계열의 새로운 화합물이 35K 근처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물질을 발견한 스위스의 요하네스 베드노르츠와 카를 뮐러는 이듬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임계온도가 높은 물질이 계속 발견되어 고온초전도체 시대가 열렸다. 보통 임계온도가 액체질소의 끓는점인 77K보다 높으면 고온초전도체로 분류한다. 액체질소는 값싸게 얻을 수 있는 냉각제이기 때문이다. 고온초전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아직 없다.

1993년에는 133K 근처에서 초전도 물질이 발견되었다. 최근 300K가량 상온의 초고압 환경에서 초전도성을 띠는 물질을 발견했다고 보고됐으나 이내 논문이 철회되었다. 상온상압의 초전도체는 그래서 과학자들이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한국 연구진이 상온상압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발견했다고 발표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 연구진이 발견한 물질의 이름은 LK-99로 납과 인회석, 구리의 화합물이다. LK-99 임계온도는 400K로 제시되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과학계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화제가 되었다. 만약 LK-99가 정말 상온상압 초전도체로 밝혀진다면, 연구진은 거의 틀림없이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는 중론에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베드노르츠·뮐러 이래로 많은 고온초전도체가 발견되었지만 아무래도 상온상압이라는 조건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구성물질도 희귀하지 않아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면 곧바로 다양한 산업현장에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양자역학적인 응축 상태가 상온상압 환경에서 구현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현상이다. LK-99의 초전도성이 확증된다면 이는 한국 과학계의 엄청난 성과이자 큰 경사임이 분명하다.

다만 과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선 칼럼에서도 썼듯이 보편성이다. 과학은 자연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나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임의의 제3자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 중요하다. LK-99라는 물질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 다른 임의의 과학자들이 독립적으로 합성해 초전도 현상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에서는 ‘레시피의 공개’가 미덕이다. 한국 연구진도 당연히 이 점을 잘 알기에 공개 검증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과학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이미 세계 각국 연구소에서 LK-99를 검증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돼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한국초전도저온학회에서 검증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나온 검증 결과들에선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네이처도 8월4일자로 다소 회의적인 뉘앙스의 기사를 실었다. LK-99의 초전도성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아직은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문제는 일부 언론이나 유튜브 영상 등에서 검증되지 않은 결과를 마치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인 양 섣부르게 유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적 내용은 누군가의 기대감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끝없는 의심과 검증 절차를 이겨내야 과학적인 사실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과정이 과학적 활동의 핵심이다. 과학이 가장 혁명적일 수 있는 이유는 가장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 밖의 욕망과 탐욕이 과학을 압도하면 비극이 시작된다. 우리는 2005년 황우석 연구진의 줄기세포 사건에서 큰 아픔을 겪었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관련주들이 들썩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에 하나라도 LK-99가 초전도 물질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까? 온갖 이해관계와 욕망만을 앞세운 사람들이 혹시나 음모론을 제기하며 과학적인 검증 결과를 거부한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큰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과학에서는 나의 기대와 반대되는 결과라도 담담하고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종필 교수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꿈의 물질’에 들뜬 마음…잠시 내려두자,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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