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임페리얼 칼리지 런던대 공동 연구
고대 유럽 빙상 녹으며 북대서양 해류 교란
온대림 번성하던 기후가 ‘반사막’으로 변화
현대 기후변화 영향 분석·대처에 시사점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고대 기후변화로 인해 유럽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된 적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춥고 건조해진 환경 때문에 식량 자원으로 쓸 만한 동·식물을 구하기 어렵게 된 유럽에 고대 인류는 약 20만년간 발을 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가속화하고 있는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도 상당한 시사점을 주는 연구라는 시각이 나온다.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장 연구팀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대 연구팀과 함께 약 112만년 전 유럽에서 사람이 사라진 원인이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 있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이날 게재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고대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는 18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중앙 유라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뒤 서유럽 방향으로 점차 거주지를 확장해 약 150만년 전에는 남유럽인 이베리아반도에 도달했다. 사실상 유럽 전역에 터전을 잡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독 90만~110만년 전 사이에 호모 에렉투스가 유럽에 살았다는 화석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점에 과학계는 의문을 품어왔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해 과거 지구 기후를 가늠할 수 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동시에 포르투칼 인근 해저에서 뽑아낸 심해 퇴적물을 집중 분석했다. 해양 퇴적물에는 강과 바람을 통해 바다에 유입된 꽃가루가 있는데, 이를 분석하면 인근 지역의 식생과 기후를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온대림에서 발견되는 꽃가루가 해양 퇴적물에서 확인된다면 과거 해당 지역의 기후가 비교적 따뜻했다는 증거다. 연구팀은 작은 해조류에 남은 유기 화합물도 살폈는데, 이렇게 하면 해수의 온도 변화 추이를 알아낼 수 있다.
이 같은 분석을 통해 연구팀은 112만7000여년 전, 평균 약 20도이던 동부 북대서양 수온이 7도까지 떨어진 사실을 발견했다. 미지근했던 바닷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한냉기 현상’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북대서양의 급격한 냉각이 남·서유럽의 식생을 온대림에서 반사막 지대, 즉 건조하고 차가운 초원으로 바꿨다고 봤다. 이런 반사막에선 무엇보다 식량으로 삼을 만한 동·식물을 얻기 어렵다. 고대 인류가 살기에는 부적합한 기후였다는 뜻이다.
당시 한냉기는 유럽에 있던 빙상이 다량 녹으면서 일어났다. 태양을 도는 지구의 공전 궤도 등이 변하면서 태양 에너지가 빙상을 녹이는 일이 갑자기 확산하자 빙상을 이루는 담수, 즉 민물이 북대서양에 다량으로 흘러들면서 바닷물의 염분이 낮아졌다.
염분 농도 하락은 북대서양 해류 순환시스템을 망가뜨렸다. 해류는 지구의 열을 골고루 섞는 역할을 하는데, 유럽 빙상이 녹으면서 지구 저위도의 열기가 비교적 고위도인 유럽으로 올라올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연구는 지난달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에서도 나왔다. 연구진은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서 북대서양 해류 순환이 2025~2095년 사이에 끊길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연구팀에 따르면 유럽이 ‘무인지대’ 상황에서 벗어난 건 약 90만년 전, 추위를 잘 견디도록 자신의 신체를 진화시킨 ‘호모 안테세소르’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이전까지 약 20만년 간 유럽은 사람 없는 땅이었던 셈이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어떤 충격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연구팀을 이끈 팀머만 IBS 단장은 “고대 인류와 달리 현대의 인류는 스스로 지구 기후를 바꾸고 있다”며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해 기후변화를 막아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