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묶여 있던 이란의 석유결제 대금 약 60억달러(약 8조원)가 풀려 4년3개월 만에 이란으로 넘어가게 됐다. 미국이 이란의 해외 동결자금을 해제하는 대신, 이란은 미국인 수감자 5명을 석방하기로 지난 10일(현지시간) 양국이 합의했고, 이에 따라 2019년부터 국내 은행에 묶여 있던 대금을 이란에 넘겨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이란 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이 치워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시킨 후 한국 내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 계좌가 2019년 5월부터 동결됐다. 이란은 자금동결을 풀라고 요구했지만, 한국은 미국의 금융 제재에 따르면서 양국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2021년에는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한국 선박이 나포돼 긴장이 고조됐다. 지난 1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국군 파병부대를 방문해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발언하자 이란이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란과의 마찰은 양국의 대미 관계에서 파생된 측면이 강하다. 정부가 미국의 대 이란 제재에 불가피하게 동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국 간의 무역거래에서 발생한 대금 지급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주권침해’도 지속됐다. 얽힌 실타래가 풀린 것은 반길 일이지만, 이 역시 미국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씁쓸함도 감출 수 없다. 미국이 대이란 제재의 기본틀을 유지하고 있어 양국 교역 개선이 곧바로 복원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과의 핵합의 재개를 위한 물밑접촉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내년 말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대이란 정책이 다시 경색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란은 중동정세의 키를 쥐고 있는 핵심국가이다. 최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교정상화에 합의하는 등 중동의 외교지형도 급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주요 산유국인 이란과의 경제관계복원은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될 수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결구도가 짙어지고, 윤석열 정부의 미·일 편중외교로 한국의 외교 시야가 한껏 좁아져 있다. 하지만 개방형 통상국가인 한국의 외교반경은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관계복원의 전기가 마련된 대이란 관계에서는 능동적인 외교력을 발휘해줄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