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 선 우리들의 행동이 결국엔 법을 바꿔낼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읽었다. “더 나은 지구를 만드는 생태정치 운동을 통해 법정을 아래로부터 바꿔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어 읽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청년 15명의 목소리가 날실과 씨실처럼 만나 엮였다. 청년기후긴급행동 ‘형사재판 읽기 모임’에 참여한 시민들이다.
앞서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대표와 이은호 활동가는 2021년 2월 경기 성남시 두산에너빌리티(전 두산중공업) 건물 앞 조형물에 녹색 페인트를 뿌리고 시위를 한 혐의로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공익 활동이라도 법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해 활동가 2명에게 벌금 총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이를 유지했다. 이제 대법원판결만 남았다.
이날 시민들은 2심 판결 후 청년기후긴급행동이 냈던 기자회견문,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법원에 낸 의견서 등을 함께 읽었다. 박 교수도 이날 모임에 참여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7일로 선고 기일을 잡았다가 연기했다. 이날 ‘지구법학자’인 박 교수가 작성한 의견서가 접수됐다.
“법의 토대 ‘공동선’이 간과되고 있다”
“숲이 충분하지 않으면 이산화탄소의 증가 추세를 꺾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없다. 산림 벌채는 반인륜적 범죄로 취급하고 그에 따른 처벌을 해야 한다”
박 교수가 낸 의견서는 세계적 식물생리학자 스테파노 만쿠소 피렌체대 교수의 주장으로 시작한다. 박 교수는 이 주장이 ‘현행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는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지구 공동체의 한 구성 종으로서의 인류’의 존속 문제로 봐야 할 이유를 핵심적으로 설명한다고 봤다.
박 교수는 현대 법 개념에서 ‘공동선’이라는 목적이 간과되고 있다고 봤다. 역사적으로 공동선은 법이 정당화되는 근거였다. 법학의 뿌리가 되는 중세 유럽의 신학자·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이 만든 법인 인정법을 “이성에 의해 지지가 되고, 입법자에 의해 공포되는 인간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규칙들”로 정의했다. 그는 ‘공동선’을 지향할 때만 인정법이 구속력을 가지고 복종할 의무를 진다고 봤다. 공동선에 어긋나는 인정법은 ‘법의 부패’로 봤다.
‘지구법’은 인간, 비인간 존재, 생태계를 나눌 수 없이 어우러진 지구공동체로 본다. 지구공동체 속에 인간이 속한 셈이다. 그래서 지구법은 인간 법체계를 ‘지구 중심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17년 미국 오리건주립대 윌리엄 리플 교수 등은 ‘인류에 대한 세계 과학자들의 경고: 2차 공지’라는 논문에서 ‘6차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5억4000만년간 다섯 차례 대멸종에 이어 ‘6차 대멸종’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봤다. 184개국, 1만5000여명의 과학자들이 이 논문에 추천자로 서명했다. 화석연료 사용에 따라 온실가스가 증가하고, 숲이 벌채되는 등 환경파괴가 이유였다. ‘기후위기’는 지구상 다양한 생명체를 포함한 지구공동체에 공동선이던 안정적인 기후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박 교수는 지구법의 관점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기후위기의 주범인 석탄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행위가 지구 생명공동체의 공동선을 해한다고 봤다. 박 교수는 의견서에서 “특히 해안 도서국, 저지대 국가 등 취약한 지역에 사는 인구를 희생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는 지구법의 견지에서는 불법행위지만, 정부는 금융 보증을 지원하고 각종 편의를 제공하면서 이런 행위를 장려했다”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시위’에 나선 두 활동가의 행위는 ‘저항권’을 행사한 것으로 봤다. 지구의 기후 시스템 붕괴에 기여할 것이 분명한 행위를 피고인들의 시위가 지구 공동선을 보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뤄진 저항적 의사 표현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재산 효용에 대한 침해 정도가 크지 않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며, 다른 방식으로 지구 공동선 또는 집합적 공익에 대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행위로 추구하고자 하는 이익과 행위로 인해 발생한 불이익 간 균형성이 유지된다면 형법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형사 범죄로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법이 생명이 아니라 대기업의 ‘상징’을 보호하는 것 같다”는 시민·활동가들
이날 박 교수의 설명을 들은 후 시민들은 4~5명씩 조를 나누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는 “석탄발전소로 수많은 생명이 죽고, 마을 공동체와 자연이 파괴되는데, 기업의 기물이 두 동강이 난 것도 아니고 스프레이를 뿌렸던 것에 벌금을 내라고 한다”라며 “현재 법이 보호하고 있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대기업의 ‘상징’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소영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는 “우리가 같이 찾아 나가야 할 게 공동의 선인 것 같다”라며 “‘공동선’이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믿음을 담고 있는 것 같아 희망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우리의 하루’라는 노래를 부르며 모임을 마무리했다.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은 불타는 숲 그러나 도망가지 않겠어/ 우리가 모으는 물방울 그 하나하나가/ 이 세상의 숲과 마을 조금씩 되살릴 수 있다면/ 언제까지라 해도 온 힘 다할 거야”
▼더 알아보려면
기후위기 앞에 선 시민들은 법처럼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성장’ 또한 당연히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져 온 경향이 있습니다. ‘기후 정책’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의 생각은 어땠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