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무관한 부처·공공기관 최소 25곳서 447명 이상 투입
전문분야 인력도 총동원…버스·숙소·급식지원까지 떠안아
인사동 둘러보는 네덜란드 대원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끝나고 한국에 남은 네덜란드 잼버리 대원들이 15일 서울 인사동을 둘러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기업 카르텔을 조사하던 A씨는 지난 8일 국가의 ‘부름’을 받아 갑작스럽게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동원됐다. 정부의 준비 부족으로 파행하는 잼버리를 수습하기 위한 대규모 차출이었다. 담합 기업들의 부조리를 조사하던 A씨에게 새로 주어진 임무는 전국으로 흩어지는 스카우트 대원들의 버스 탑승과 향후 일정 안내 등이었다. 잼버리에 동원된 기간 그는 원래 업무를 하지 못했다.
정부가 잼버리에 공무원·공공기관 직원들을 대거 ‘강제동원’하면서 마구잡이로 일을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분야에서 일하던 이들까지 주먹구구로 투입되면서 부처마다 업무 공백이 발생했다. 정부가 행사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벌어진 파행의 뒷수습을 일선 공무원·직원들이 그대로 떠안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잼버리를 담당하지 않는 각 정부 부처·공공기관들에서 받은 ‘잼버리 파견 및 동원 소속 직원·공무원 현황’을 보면 지난 1일 잼버리 개영 이후 부처·공공기관 최소 25곳에서 447명 이상이 동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직급도 서기관(4급)부터 서기보(9급)까지 다양했다.
의원실 질의에 답변하지 않은 기관과 집계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 소속 인원을 고려하면 실제 동원 인원은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기획재정부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전북 부안군 새만금 영지에서 퇴영한 지난 8일부터 잼버리조직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각 부처와 공공기관 등 40여곳에 약 1000명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기관별로 동원된 인원을 보면 환경부가 4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농림축산식품부 43명, 한국마사회 40명, 예금보험공사 30명, 농촌진흥청 28명, 신용보증기금 20명 등이었다.
동원된 공무원들은 원래 하던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맡았다. 특허청 공무원 16명의 원래 담당 업무는 특허심사, 상표심사, 국제특허출원심사 등으로 다양했다. 인공지능·빅데이터 관련 발명을 다루는 직원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잼버리 대원 안내’ 업무를 맡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방사성폐기물 안전과 원자력안보를 담당하던 직원들은 잼버리에서 숙소 배정·안내부터 급식 지원까지 떠안았다.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에서도 14명이 차출됐다. 하도급·가맹거래 조사 담당 공무원, 제조업을 감시하던 공무원들은 버스 탑승부터 참가자 요구 파악 및 전달까지 맡았다. 국가보훈부에서 군인 보훈·보상을 담당하던 5~9급 공무원 15명은 잼버리 대원들이 새만금을 떠나 새 숙소로 잡은 대학에서 통역·안내를 담당했다.
정부의 방만 운영으로 파행에 이른 잼버리의 수습을 일선 행정인력이 떠안은 셈이다. 신 의원은 “정부가 책임지고 치러야 할 국제행사를 사전에 충분히 계획하고 부처 간 협조도 미리 구할 수 있었음에도 파행까지 내몰렸고, 수습하기 위해 전혀 상관없는 부처 공무원들까지 총동원했다”며 “권한을 가진 이들이 책임도 져야 하지만 뒷수습은 오로지 공무원 몫으로 전가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