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전문가들은 미국·프랑스·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이 문화의 제국을 구축하고 있다고 본다. 창과 칼이 아닌 한국의 감성이 세계인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갖은 수난을 극복한 이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던 선각자들의 예언이 맞아떨어졌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할리우드를 넘어 ‘한류우드’를 건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류를 낳은 정신은 무엇인가.
한국철학 연구자인 교토대학의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류의 마중물이 된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이 최지우에게 폴라리스 목걸이를 건네며, “앞으로 길을 잃었을 땐 제일 먼저 폴라리스를 찾아 봐.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라는 대사를 핵심으로 꼽았다. 지구의 자전축 위에 선 부동의 별인 북극성은 예전엔 천문학이나 항해의 중심이었다. 오구라 교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조성환 옮김)에서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라고 말한다. 조선 오백 년 동안, 북극성처럼 성리학의 ‘리(理)’가 한국인들의 심성을 형성했으며, 그것의 발현인 도덕이 한국인의 삶을 관통하고 역동적인 한류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대륙에서 해양으로 연결된 문명의 통로 역할을 하면서 한국적 철학을 형성했다. 유불선 삼교를 포용하는 최치원의 풍류나 성속을 넘나드는 원효의 일심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서구 기독교의 정착도 무소부재의 하느님이라는 초월적인 세계관으로 인민을 하나로 묶어주었기 때문이다. 한류의 개방성과 포용성, 그리고 휴머니즘은 잦은 외침으로 한(恨)이 쌓인 한반도인들의 정신적 지혜다. 세계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은 ‘다이너마이트(Dynamite)’에서 “난 다이아몬드, 빛나는 걸 알잖니. 오늘 밤 난 별들 속에 있으니 내가 불꽃으로 이 밤을 찬란히 밝히는 걸 지켜봐” ‘삶은 계속된다(Life goes on)’에서는 “멈춰 있지만 어둠에 숨지 마. 빛은 또 떠오르니깐”이라며 희망의 철학을 노래한다.
한류는 외환위기 시기에 겪은 절망을 뛰어넘어 아예 세계를 무대로 삼으면서 시작되었다. 더 이상 뚫고 나갈 수 없는 벽에 부딪혔을 때, 땀과 눈물로써 세계를 향해 비상한 것이다. 이제는 한식, 스포츠, 언어, 그리고 정신세계까지 세계인들은 관심을 갖고 한국 문화에서 삶의 영감을 얻고자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삼류에 머문 한국 정치는 한류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잼버리 참가자들을 위해 벌인 K팝 콘서트를 보며, 한류를 그저 자신들의 실책을 만회하기 위한 도구로 삼는 이 정부의 한심한 모습에 실망했다. 정치 또한 한류처럼 지구촌 리더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지 않는가.
더욱이 정치가들의 퇴행적인 언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버겁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고 했다. 독재정권이 써먹던 철 지난 이념논쟁으로 백성을 분열시키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살신성인의 자세야말로 모두 승자가 되도록 하는 정치의 예술이다. 넓게 보면 한류는 폐쇄적인 한국정치에 대한 반동, 즉 분열과 증오의 난장판을 뛰어넘은 저항정신의 산물인 것이다.
한국정치의 후진성은 외세에 의한 분단, 자본주의의 책동, 이익을 앞세운 소인배들의 준동에 연유한다. 일신의 안일을 위해서는 부끄러움도 없는 표변과 변절로 정의의 역사에 대한 반동을 보여준다. 그 절정은 법가의 지배다. 힘 없는 자에겐 무용지물인 법은 권력의 욕망을 채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피고와 원고로 나누는 형법을 다루는 검사들의 위상은 패가 나뉜 백성들이 서로 삿대질할 때만 서게 된다. 법가의 정치가 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먹이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도 한류의 주인공들처럼 실력을 갖춰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오욕만 쌓일 뿐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를 한집안 삼아 통합해 내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다. 국민은 대립과 갈등, 그리고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정치가들은 어떤 아수라의 환경에서도 모두를 끌어안는 국량이 있어야 한다. 번뇌는 보리(깨달음)다. 모두 한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류로 세계인들이 한 가족이 되고 있듯 이 땅의 정치가들 또한 한마음으로 도(道)의 정치를 펼치기를 바랄 뿐이다.